갸루, 파라파라, 에그 매거진
태닝한 피부, 밝은 염색 머리, 진한 아이섀도. 최근 몇 달간, 갸루의 매력에 빠졌다. 첫 조우는 푸마와 슬램 잼의 협업 캠페인 영상. 25년도에 촬영했을 거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뭉개진 화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과장된 착장의 갸루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그 시대를 향유했던 것은 아니기에 향수는 아니었을 터. ‘갸루가 되겠어!’라는 동경심도 없었기에 이런 필자의 관심이 사뭇 신기하게 느껴졌다. 러블리즈 멤버 미주의 갸루 분장, 거칠고 솔직한 매력으로 인기를 끈 <불량 연애>의 키짱 등 다양한 매체에서 갸루 문화가 조명되면서 흥미는 더 기폭 되었다.
그렇게 갸루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을 지배하던 중, 한 *갸루오를 만나게 된다. 이름은 코쇼(Kosho). 그는 갸루 테마 바를 운영하고, 페스티벌에서 파라파라 공연을 하는 등 갸루를 동경하는 젊은이다. 이런 그의 동경은 2025년 데뷔 싱글 <The Ultimate Center GUY Anthem>으로 이어진다. 이 곡은 갸루오인 자신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동시에, 갸루 문화의 본진이었던 센터가이를 흠모하는 찬가다. 묘하게 박자가 밀린 채로 춤을 추는 코쇼의 모습은, 구수한 머리 냄새를 계속 맡는 것처럼 자꾸만 보게 된다. 갸루의 매력에 연타를 맞은 후, 결국 *《egg》 매거진 10주년 기념 잡지를 구매하게 됐다.
*갸루오: 갸루의 남성 버전
*《Popeye Magazine》이 시티 보이를 위한 잡지라면, 《egg》는 갸루를 위한 잡지.
흔한 *아네모이아의 일종일까? 외국인이 한국에서 한복을 경험하는 것처럼, 일본에서 갸루 분장과 착장을 체험하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하이삭스, 레오파드 패턴, 글리터 디테일 등 갸루가 주로 착용했던 아이템도 속속들이 팔리고 있다. 필자처럼 갸루 문화에 매료된 이들이 늘고 있는 것.
*아네모이아: 경험하지 못한 시대와 문화에 대해 느끼는 향수
갸루와 뗄 수 없는 춤인 파라파라 또한 숏폼 문법으로 잘 번역되어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필자는 갸루 그 자체보다 이 기분 좋은 춤사위, 파라파라에 더 매료됐다. 초창기 갸루는 화려한 옷차림과 과한 노출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을 ‘댄서’라고 불렀다. 그 시절 과장된 착장을 긴말 없이 설명하기에 적절한 변명이었던 것. 실제로 갸루는 매일 클럽과 광장에 나가 춤을 즐겼으니 반은 맞다고 볼 수 있다. 갸루와 파라파라, 이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갸루(ギャル, Gyaru)는 1990년대 일본에서 탄생한 하위문화다. 초창기 갸루는 중고등학생 불량배 집단인 ‘티머’의 여자친구였다. 티머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이런 뒷배를 둔 갸루에게도 권력과 자유가 쥐어졌다. 갈색 피부, 염색 머리,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속옷이 다 보이는 미니스커트와 하이힐. 갸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비해 초창기 갸루는 수수했다. 가수였던 아무로 나미에의 영향으로 갸루 스타일이 자리 잡았으며, 긴 생머리에 살짝 태운 피부, 교복에 헐렁한 양말을 입은, 이른바 ‘고갸루’ 스타일이 유행했다.
진하다 못해 검게 태운 피부와 하얗게 뒤덮은 아이라인의 야맘바, 밝은 피부에 공주풍 리본과 드레스를 입는 히메갸루, 힙합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레게 머리에 스냅백을 착용한 비갸루. 이후 갸루는 점점 더 과장된 스타일로 변하거나 다른 서브컬처와 결합하며,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일본 유스 컬처를 호령했다.
1995년, 갸루 열풍에 발맞춰 갸루를 위한 매거진 《egg》가 창간된다. 당시 《egg》는 갸루의 바이블로 여겨지며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프로 모델이 아닌 시부야에 모인 갸루 여고생을 섭외해 구성했으며, 이들 중 매력적인 인물을 뽑아 ‘E-girl(Egg-Girl)’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갸루계의 ‘인플루언서’. 우리나라에도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 얼짱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지 않은가. 《egg》는 갸루가 활동할 수 있는 하나의 매체이자, 동경하던 갸루의 모습을 따라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었다. 《egg》를 들여다보면 갸루의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를 엿볼 수 있다.
10주년 기념호는 E-girl 중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두 명의 스타가 표지를 장식한다. 와타나베 카우루와 요시다 마츠미. 와타나베 카오루는 역대 E-Girl 중 가장 많이 표지에 등장했으며, 편집장보다 뒷정보를 많이 아는 정보통이었다. 요시다 마츠미는 잡지에 등장한 지 3개월 만에 표지를 장식한 신인 갸루로, 귀여운 얼굴로 《egg》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다. 갸루계의 톱스타들이지만 이들에게 묻는 문장은 귀엽다. 연애는 잘 되어 가는지, 주로 쇼핑은 어디서 하는지, 요즘 고민은 무엇인지. 갸루는 거칠고 반항적이지만, 여전히 어린 여고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자와 6개월 이상 사귈 수 있는 팁, 시부야에서 만난 미남 인터뷰, 3:3 소개팅 기획 취재부터 파티나 클럽 홍보, 스타일링 콘텐츠, 갸루의 은어인 갸루모지 강좌까지. 요즘의 갸루가 패션 스타일로 소비된다면, 당대의 갸루는 그 너머의 문화였기에 《egg》는 패션 잡지라기보다 라이프스타일 잡지에 가까웠다. 10주년 기념호에서 눈에 띈 것 중 하나는 갸루의 사회 진출을 위한 광고가 유독 많았다는 것. 고등학교 중퇴자를 위한 상담소 광고나 네일 아트나 미용을 가르치는 학원 광고처럼 필자가 당시의 갸루였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현실적인 내용도 꽤 많았다.
“지금은 너무 달라요. 갸루는 단순한 패션 스타일이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이었죠.”
요네하라 야스마사, 전《egg》편집장
갸루는 일종의 반항이었다. 당시 일본은 유독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조했는데, 이에 대한 반항 정신 아래 개성과 자유를 강조한 갸루 문화가 발전한 것이다. 당시 뉴스에서는 ‘도덕성 타락’이라는 제목을 붙여 대서특필했을 정도로 충격적인 행보였다. 수줍고 순종적인 여성상과 달리,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소녀들의 모습은 《egg》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이었던 요네하라 야스마사를 매료시켰다.
요네하라는 사부카루와의 인터뷰에서, 갸루가 태닝 피부에 집착하는 현상에 자기혐오가 작용했다고 말한다. 당시 일본인은 ‘일본인스러운 것’을 매우 촌스럽다고 느꼈으며, 피부를 태우는 것이 보수적인 일본인의 생활방식과 거리를 두는 동시에 세련돼 보이려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복식 문화에 대한 일본인의 집착에도 이런 면모가 있으니, 이 주장은 꽤 신빙성이 있다.
요네하라는 자신이 취재한 갸루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갸루의 완고한 태도를 설명한다. 짧은 치마를 입고 있던 갸루 소녀가 계단을 오를 때 속옷이 훤히 드러나는 것을 보고, 요네하라는 노파심에 그 사실을 전했다. 그런데 갸루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으로 맞받아쳤다고 한다. 그들은 나답기 위해 갸루를 택했으며,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요네하라는 갸루 문화가 하나의 스타일로 소비되는 데 흥미를 잃은 듯 보인다. 남성 독자층이 생기면서 점차 매체에선 남성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외모나 옷차림을 중점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 요즘 다시 갸루가 리바이벌되는 데도 패션적인 측면이 크다. 갸루의 발칙한 자유는 찾아볼 수 없고 틀에 박힌 하나의 패션 장르가 되어, 갸루의 사고방식과는 사뭇 동떨어진 유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갸루의 패션 스타일만 따르는 기저에는, 갸루의 반항적인 면모를 외형적으로라도 흠모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반항이 쉽지 않은 시대, 코스튬의 개념으로라도 ‘반항’을 입고 싶었던 건 아닐까. 물론 코어 패션의 유행 아래 그저 재미로 소비됐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1999년 갸루는 파라파라를 추기 시작했다. 당시 파라파라는 기무라 타쿠야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파라파라를 췄던 것을 시작으로 대중화되었으며, 갸루에 의해서 증폭되었다. 파라파라는 유로 디스코 풍의 빠르고 원초적인 비트에 맞춰, 정해진 동작을 여럿이 함께 반복하는 춤이다. 좌우 스텝에 팔과 손을 사용한 단순한 동작은 웬만한 ‘춤치’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클럽처럼 좁은 공간에서 긴 치마, 구두 등 불편한 복장으로도 출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는 점에서 갸루의 생활 양식과 잘 들어맞았다. 파라파라가 유행하던 시기, 《egg》에서는 매호 안무 강좌를 게재했다.
갸루와 파라파라는 찐득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갸루가 파라파라 춤을 창시한 것은 아니다. 파라파라는 일본의 버블 경제 시대 고급 클럽에서 시작되었으며, VIP룸에서 일하는 남성들이 여성 고객을 위해 만든 안무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파라파라는 시대에 발맞춰, 방송과 게임 그리고 병원의 다이어트 코스까지 점령하는 등 일본에서 범사회적인 문화현상을 만들어냈다. 파라파라의 유행은 한국까지 퍼졌는데, 대표적으로는 소유진의 파라파라 퀸. 그리고 유로비트, 테크노 하면 빠질 수 없는 이박사가 2집 앨범을 파라파라로 채웠는데, 일본에서 한달간 댄스강습을 받을 정도로 파라파라에 빠졌다고 한다. 대중문화에 깊이 관여된 파라파라는 애초에 갸루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갸루가 파라파라와 연결된 특별한 계기는 없다. 그저 당시 클럽에선 파라파라가 유행했고, 갸루는 클럽에 자주 갔다. 오히려 두 대상은 모순적이기도 하다.
파라파라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클럽 비디오’, 이른바 댄스 강좌 비디오다. 파라파라는 노래마다 정해진 동작이 있고 루틴이 있어, 전부 외워서 춰야 하는 게 특징이다. 미리 정해진 춤을 여럿이 함께 추며 즐긴 일종의 군무에서 유래했기 때문. 기초 동작을 응용하는 것이 아닌, 노래에 맞춘 정확한 교본을 따라 춰야 한다. 시대를 불문하고 각 노래의 파라파라 안무는 바뀌지 않는다. 갸루들은 VLC 미디어 플레이어를 사용하여, 동작을 완벽하게 모방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비디오는 당시 유명한 클럽 이벤트에서 직접 제작했는데, 파라파라 역사에서 두드러진 안무가 그룹인 Twinstar, 9 love j, starfire의 안무가 주로 퍼졌다. 파라파라는 단체로 출 때는 모든 구성원의 동작이 완벽하게 일치했기에, 몇백 명의 갸루가 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는 장면은 기이하면서도 아름답다.
여기서 갸루와 파라파라의 만남이 어색한 이유가 드러난다. 갸루는 기성 여성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집단성에 반하는 행동이라면, 파라파라는 프리스타일과 개성을 드러낼 수 없는, 어떤 춤보다 집단적인 춤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아를 집단에 의탁하지 않기 위해 과장된 분장을 택했던 그들이, 다시 획일적인 춤사위를 열렬히 배우고 강습에 참여한다니. 필자는 이 만남이 어색하기만 했다. 왜인지 갸루는 가장 전위적인 노래에, 자신의 개성을 담은 프리스타일 춤을 출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편협한 생각이자 흑백 논리였을까? 개성과 반항을 상징해도 여고생은 여고생. 자신의 개성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기에, 함께 추는 파라파라가 위로가 됐을지도 모른다.
갸루의 파라파라와 K-POP의 랜덤 플레이 댄스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함께 춘다는 점에서, 그리고 노래에 맞는 춤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하지만 파라파라는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간단한 동작으로 다 같이 즐기는 춤이라면, 랜덤 플레이 댄스는 비교적 복잡한 안무를 통해 각자의 실력을 뽐내는 춤에 가깝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보다는, 시대에 따른 변화에 가깝다. 한국의 꼭짓점 댄스와 테크노 댄스가 유행했던 적이 있으니 말이다. 춤은 점차 고도화되고 전문화되며, 잘 추는 사람은 가운데로, 못 추는 사람은 배척되어 스테이지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
지금의 춤판을 비판하려는 의도라기보다 과거 단체 군무에 대한 그리움에 가깝다. 학창 시절, 필자는 반별 단체 댄스를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웠는데, 춤실력과 별개로 하나의 동작을 다 같이 맞추는 행위가 뿌듯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하는 군무와 2000년대 후반의 플래시몹은 멋있게 느껴진다. 함께 추는 춤은 같은 움직임을 공유하며 연결성을 느끼게 해준다. 타인과의 차이와 낯섦을 차치하고 그 순간만큼은 같은 타이밍에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동작이 단순할수록 실력보다는 함께 맞춘다는 감각이 더 크게 남기에, 그런 춤판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함께 추는 춤이 어쩌면 삭막한 공동체 속에서 배려의 싹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과 함께 나 홀로 방에서 스텝을 밟고 팔을 휘적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