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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가찌 Sep 12. 2020

결국, 다양성 아니겠어요?

다다르다 서점일기 #47 모두를 위한 도서정가제

@서울 대학로 이음책방 지기 


최근에도 도서정가제 폐지를 원하는 분들이 다다르다 계정에 댓글을 달아주고 계신데요. 제가 쓴 글 또는 유유 출판사의 글에 비아냥거리거나 비웃는 형태의 글을 남기신다면, 사전 예고 없이 댓글을 삭제할게요. 도서정가제에 대한 견해를 나누어주시는 것은 언제든 찬성입니다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좋겠어요. 


도서정가제에는 수많은 이슈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웹툰과 E-Book에 관련된 내용은 저도 잘 모르는 영역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도서정가제의 핵심은 '책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것', '책을 매개로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불완전한 도서정가제로 인해 마치 독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처럼 프레임을 씌우는 분들이 많습니다. 최저임금에 비해 책의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현재 유통되는 책의 가격에 책을 만드는 이들의 비용이 온전하게 책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은유 작가의 <출판하는 마음> 에는 책을 만드는 이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습니다. 작가와 출판사, 서점, 독자 사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노동이 저평가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합당한 책의 가격을 지불하는 사회가 되어야 더 다양한 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네서점을 위해 교묘한 가격 조율을 위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 분들께, 자본주의에서 가격 경쟁의 제한을 두는 업종이 하필 '좋아하는 책'과 관련되어 불편함을 겪고 계신가요. 도서정가제가 폐지되고 출판사가 자율 경쟁을 하게 되면 대형 출판사 혹은 책이 아닌 다른 업종 (부동산업을 하는 서점 또는 출판사, 책이 우선순위가 아닌 다른 업종의 무언가)으로 영업 이익을 고민할 것입니다. 지금의 온라인 서점도 대부분 온라인 서점에서 영업 이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혹은 중고서점으로 영업 이익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정상적인 걸까요? 시대의 흐름이라고 하기에는 놓치고 가는 것이 너무 많지 않을까요? 무조건 팔리는 책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유행처럼 쏟아지는 에세이도 시대를 반영하고, 온전한 개인의 삶을 반영했기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역과 마을을 기록하는 매거진도 지역사회에 소중한 존재인만큼, 더 다양한 책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엉뚱한 비즈니스 모델로 책의 가격을 다운시켜 잘 팔리는 책을 만든다면, 분별력 없이 베스트셀러만 남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 부족한 다양성을 누가 채울 것이냐는 거죠. 


졸린 두 눈을 비비며 마지막 문장을 채워요. 전국 동네책방, 독립서점에는 존경하는 선배, 어른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닮고 싶은 어른이 여럿 있나요? 저는 아주 가까이에 있지는 않지만, 동네 곳곳에서 함께 잘 먹고 잘 살자며, 사회적 약자에 대해 더 살피며 함께 살아가자고 목소리 내는 어른이 많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대학로에 갈 때마다 꼬박 들르는 서점이 있습니다. 지하 1층에 마련된 이 공간은 마치 일본 키치죠지나 시모키타자와에 온 감정을 선물합니다. 실제 운영 방식도 공간을 좋아하는 분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최근 이 곳 책방 대표님이 서점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의 감정처럼, 가슴 한편이 아프고 먹먹합니다. 오늘은 도서정가제와 관련한 1인 시위에 나섰습니다. 함께 하지 못하는 마음, 우리가 아무리 소리쳐봐야 바뀌지 않을 거라는 두려운 확신이 하루를 더 고단하게 합니다. 동네책방, 독립서점을 운영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은 불확실한 미래를 함께 나누고, 서로가 연결되며 조금씩 감정이 채워지는 것을 느낄 때입니다. 도서정가제가 폐지되면 더 이상 동네책방, 독립서점의 미래는 없습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서점이 두세 달을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폐업을 할 거라 예상합니다. 여러분의 여가 생활, 다다르다와 도시여행자를 향한 응원의 마음이 '도서정가제' 이슈까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제가 정답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선택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것인지는 치열하게 고민한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거나,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댓글 혹은 서점에 방문하셔서 서점원과 대화를 요청해주세요.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점원 라가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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