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르다 서점일기 #48 책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1. 대전 인재개발원에서 진행한 <여행으로 문화를 읽다> 강연에 다녀왔어요. 대전광역시 산하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 분들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자리였는데,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화상 카메라를 켜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낯설고 서툴게 느껴지네요. 평소와 다른 일상을 보내는 것, 낯선 호기심이 발동하는 순간을 여행이라 생각하는데요. 어제는 서점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업무를 진행했고, 대흥동 원도심이 아닌 유성구를 돌아다니다 보니 일상과는 사뭇 다른 여행의 느낌이었어요. 정혜윤 작가님의 <아무튼, 메모>를 손에 들고 가장 오래 버스를 탈 수 있는 노선을 골라 탔어요. 버스가 윙윙 돌아가는 노선을 운행하더라도, 자리에 앉을 수만 있다면 책 한 권 읽기에 딱 좋은 곳이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맨 뒤에서 두 번째 자리를 맡고는 가방 위에 책 한 권을 꺼냈어요.
2. "사실, 나는 자주 과대평가되었다. 실제의 나보다 더 잘나 보이고 장차 더 잘 해낼 것으로 보였다. 나는 '아무튼, 기대주'였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은 빈 깡통이고 말은 앵무새처럼 남의 말이나 따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나도 그런 시선을 우월감 속에 은근히 즐겼다. 그런 태도를 가리키는 단어가 있다. 허영심이다(그렇지만 언젠가 들통이 나서 망신당하지 않을까 내심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상처는 상투적인 것에서 온다고 했던가. 그 말은 나에게 적용시키면 맞다. "부끄럽다면 최대한 빨리 그만두는 것이 좋다"지만 이 간단한 문장 하나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못하겠어요! 난 그런 사람 아니에요." 솔직하게 인정하면 그만이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기대받는 것만큼 '진짜로' 잘 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또한 내게는 있었다.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잘하고 싶었다.
(p.32) 『아무튼, 메모』 정혜윤, 위고
"누군가 죽어도 눈 깜짝할 것 하나 없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으니까.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이런 사회에선 각자 타살당하지 않기만을 바라야 한다."
(p.48) 『아무튼, 메모』 정혜윤, 위고
3. '독립출판'과 관련한 강연을 다녀왔어요. 대전대학교 30주년 기념관 7층에서 진행했는데, 이 곳의 경치가 끝내줘요. 독일의 작은 소도시 '카셀 (Kassel)'이 생각나기도 했고,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원주의 '뮤지엄 산'이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싶었어요. 지난주에도 대전대학교에 강연을 왔다가 건물 사진만 잔뜩 찍고 왔는데, 오늘도 건축물과 풍경이 멋지네요. (지인 분들이 연락 주셨는데 승효상 건축가의 작품이라 하더라고요. 감동) 외출을 위해 서점을 잠시 맡겨두었어요. 제 유치원 동창이 운영하는 (그는 저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저는 서운해하지 않았습니다만) 도어북스에서도 일했던 '하동규' 님이 임시 서점원으로 서점을 맡아주셨어요. 권나무의 '화분'처럼, 혹시몰라의 'Happy there'처럼 잔잔한 분위기가 연상되는데, 많은 분들을 만났으려나 궁금하네요. 택배 발송으로 하루를 다 보내고 있지만, 덕분에 이 공간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면.... (꾹 참고 박스 접고 있습니다) 이병률 시인의 신간, 장기하 산문집, 김금희 작가의 신간까지 순차적으로 발송 중입니다. 개별적으로 연락이 늦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려요.
4. 지난주에는 군부대에서 도서 구매에 대해 연락이 와서 부지런히 견적서를 넣었건만, 10% 할인 요청으로 무산된 것 같아요. 공공이나 단체, 기관에서의 도서 납품은 정가로 구매해도 괜찮지 않나요? 100만 원어치 책을 납품해봐야 현금 흐름이 부족한 서점 입장에서는 선구매할 능력도 되지 않을뿐더러, 책을 확인하고 재포장 후 발송 비용까지 생각하면 15% 안팎으로 남는 것 같아요. 서점업은 보통 일이 아니군요. 지금껏 서점을 지켜온 분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5. 다다른 북토크,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독립출판학교, 독립출판마켓이 지역에서 지속되면 좋겠어요. Support your local ㅡ
6. "30%라고 하면 큰돈이 될 것 같은데, 책 한 권 1만 원에 팔면 3천 원이 남는다는 얘기다. 한 달에 150만 원 벌려면 500만 원 가까이 팔아야 한다. 500만 원 판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브로드컬리 편집부
7. 브로드컬리 편집부의 신간 메일 제목을 봤지만, 메일함을 확인할 수 없었어요. (배송 작업에 허덕이는 라가찌는 노트북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마감을 일주일 앞둔 원고가 두 개나 있고, 다음 주에는 서점 일 층을 보다 쾌적하게 (?) 바꿀 마음입니다만, 마음만 앞서지.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혼자 일해서 그런지, 누군가 있을 때보다 능동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나름 속도를 내는데도 무엇을 했는지 티가 나지 않는 그런 느낌. 브로드컬리를 살- 짝 살펴보다가 한 서점원의 인터뷰에서 '한 달 동안 150만 원을 벌려면'이라는 문장이 나와요. 서점원들은 이렇게 소박하다니까요. 브로드컬리가 세상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전했음에도, 서점에서 일하는 분들과 서점을 보면 궁금한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에요. 여러분도 같은 마음인가요? 히히. 다들 뭐 먹고살고 있나요? 다다르다 영수증 서점일기에 표현한 것처럼, 연봉 일억 원을 버는 서점원이 되고 싶어요. 그래야 더 다양한 서점이 생겨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만)
8. 퇴근하려는데 성심당 빵이 가득한 쇼핑백이 책 옆에 있는 거예요. 빵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발을 동동 굴리는 순간 전화가 왔어요. 내일 찾으러 오시겠다고. 책을 사 가면서 빵을 두고 간 상황이 왜 이렇게 귀엽죠. (서점원 라가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