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르다 서점일기 #52 외부 기고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지 않은 채로, 몇몇 분들이 기다리는 서점일기를 쓰느라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글 쓰는 훈련이 덜 된 탓일까요.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쓰고 싶지 않지만, 서점이 열려있다는 것을 알려야 함에 꾸역꾸역 키보드를 누르고 있어요.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더 읽고 나서 부지런히 글을 쓰도록 할게요. 아주 오래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글을 보내야 했어요. 머리를 쥐어 짜냈지만, 부족함 투성이에요. (아무튼, 최근 서점 소식과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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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첫출발, 여행 서점 <도시여행자>
2011년 10월, 대전의 고즈넉한 골목 한편에 작은 공간을 열었다. ‘지역 여행을 안내하는 여행자 카페’와 ‘복합 문화 공간’을 표방하며 지역 주민과 교감을 시작했다. 동네 곳곳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라디오 역할부터 주민과 여행자가 한 곳에서 어울리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전은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박하고 잔잔한 빛을 내는 사람과 공간이 많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묶어 전달할 사람이 부족했던 것 같다. 서점을 연 동네는 옛 충남도청과 시청을 비롯해 관공서가 위치해 유동인구가 많았던 동네다. 시간이 흘러 관공서는 신도시로 이전하며 원도심에는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지만, 임대료가 낮아진 틈을 타서 문화예술 창작자가 골목 곳곳 숨겨진 공간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서울 대학로에 가지 않아도 연극을 볼 수 있는 소극장과 곳곳에 숨어 있는 인사동만큼 매력적인 갤러리, 인디뮤지션이 꾸준히 공연을 올리는 라이브 클럽을 비롯해 직접 만져보고 구입할 수 있는 화방과 필방, 문구점에는 학생들과 창작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도시여행자>도 책과 문화 콘텐츠 기획을 통해 지역에 작은 영감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 동네에 책방이 필요하다고 느껴 복합 문화 공간에서 서점으로 확장했다.
전국 곳곳에서 대전으로 오는 여행자를 주로 만났지만, 대전에 살면서도 동네를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어 지역을 잘 알지 못했던 주민과의 만남도 의미가 있었다. 지역에서 창작 활동에 힘쓰는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간과 골목을 구석구석 여행하다 보면 동네가 새롭고 낯설게 느껴졌다.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감정처럼 익숙했던 일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여행’을 매개로 사람과 교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행 서적과 독립출판물로 공간을 채웠다. 서울에서는 <유어마인드>를 비롯한 몇몇 독립서점이 생겨나며 스스로 창작하고 책을 만들어 유통하는 문화가 확장하고 있었는데, 지역에도 독립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서점의 형태를 갖춘 것도 이즈음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독립출판 작가로부터 입고 요청 메일을 수북이 받아 마음이 푸근해졌다. 지역 독자에게 작가의 다양성을 전달하는 데에 보탬이 되고자 입고 요청을 쉽게 수락한 편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위탁받았던 책의 정산이 늦어지며 작가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이러한 이유로 2017년부터는 독립출판물을 위탁 판매하지 않고 전량 매입해 작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여행 모임을 비롯한 취향 모임과 독서 모임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고, 이따금 작가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북토크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이후에는 ‘지속 가능한 여행 페스티벌’을 모토로 <시티페스타(CITY FESTA)>를 기획하며 ‘여행 서점’으로의 역할을 확장했다. 해마다 지역에서 시민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며 주제를 바꾸고, 지역을 새롭게 해석하고 함께하는 이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축제이다. 살고 있는 도시의 삶을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자원봉사와 먹거리, 홍보 부스를 없애고 마을 지도를 만들어 배포했다. 덕분에 약 3,000여 명 이상의 관객이 방문하는 축제로 성장할 수 있었다.
공간의 퇴거와 시민 자산화
2018년 8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건물 관리인으로부터 세 통의 내용증명을 받았다. 월세를 두 배로 올려달라는 요구를 거절했더니 공간에서 퇴거하라는 통보를 한 것이다. 새로운 공간을 찾아 서점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건물주와의 협상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공간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시 같은 건물에 상주하던 세입자 열일곱 팀이 순차적으로 쫓겨나는 일이 있었다. 결국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운 예술가와 창작자는 악덕한 부동산 시스템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동네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서점 문을 닫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마땅히 여유 자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집단 내몰림 현상’으로 공간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가 여럿 들려왔고, 이들은 마땅한 대안 없이 영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내몰림 현상을 극복한 사례도 있었다. 영국 리버풀에서는 100년 넘은 빵집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시민이 함께 돈을 모아 빵집 운영을 위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경기도 시흥 월곶과 전남 목포를 중심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시민이 함께 힘을 모아 공간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지역의 사례를 참고하고 용기를 내 단골손님에게 함께 돈을 모아 건물을 매입하자고 제안했다. 개인 또는 회사가 건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형태를 띤 특수 목적 법인을 만들어 건물을 매입하고, 서점은 이에 합당한 월세를 지불하고 싶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서점의 건물주와 세입자를 모집하는 공지를 올렸고, 한 달 동안 50여 명과 함께 약 1억 6천5백만 원의 매입 비용을 마련했다. 원도심 내의 건물을 통째로 매입하기에는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서점이 가진 공공성을 확인하고 한 단계 나아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결국 ‘시민 자산화’를 통해 건물을 매입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다음 서점 공간을 준비하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
서점 <다다르다>
기존 <도시여행자> 서점이 여행 서점의 콘셉트를 가졌다면, 새로운 공간에서의 서점은 다른 형태로 독자를 만나고 싶었다. 서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깨달은 지역에 꼭 필요한 이야기는 ‘다양성의 공존’이었다. 서점 <다다르다> 이름에는 ‘우리는 다 다르다’와 ‘우리는 어딘가에 다다른다’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 지역의 다양한 삶이 표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또한 대전을 떠나지 않고도 다양한 문화를 즐길 환경이 필요한데, 전반적인 산업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콘텐츠가 매우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더더욱 모든 것이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사회 구조에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대전에는 19개의 대학교가 있어 청년 인구가 30% 내외로 젊은 도시에 속한다. 서점에서는 주로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 손님을 만난다. 어떤 책을 구매했는지 기록하고, 일상 대화를 꼼꼼하게 살피면서 대화 주제를 확장하고, 읽을 만한 책을 권하기도 한다. 책을 골라주는 서점원 역할과 함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매니저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3개월 단위로 열리는 독서 모임에서 책을 매개로 생산적인 대화가 오가는 경험을 제공하고, 비정기적이지만 기획전과 북토크를 통해 작가와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독립서점 중심의 독서 문화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며 개인과 지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효과를 일으킨다.
<다다르다>는 약 6,000명의 느슨한 독서 공동체와 약 70명의 단단한 독서 공동체가 함께한다. 서점 방문을 통한 마일리지 적립과 서점 소식을 주기적으로 받기 원하는 이들은 느슨한 독서 공동체로, 시민 자산화 투자와 3개월 단위로 열리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단단한 독서 공동체로 묶고 있다. 나아가 창작 공동체를 통해 출판물을 만드는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출판을 앞둔 예비 작가와 독자를 위해 ‘독립출판 학교’와 ‘독립출판 마켓’을 여는 <도시산책>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앞으로도 서점 생태계와 함께 출판 생태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
영수증 서점 일기
<다다르다>는 독서량이 많은 독자보다는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서점이다. 읽고 싶은 책이 가득한 독자는 책을 선별하는 큐레이션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일상에서 독서 습관을 갖지 못한 분, 이제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분에게 재밌는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전할 수 있다. 가볍게는 세 가지의 키워드를 듣고, 세 권의 책을 골라준다. 최근 읽었던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 관심사, 버킷 리스트, 꿈, 감정 중에서 세 가지의 키워드를 듣고 도움이 될 만한 세 권의 책을 골라준다. 대화의 공통분모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편인데, 책을 추천받는 사람의 표정을 바라볼 때가 가장 즐겁다.
하루에도 수많은 신간이 쏟아지기 때문에 서점원이 모든 책을 읽고 골라줄 수는 없는 환경이다. 그렇기에 한 방법으로 서점을 자주 방문하는 분의 취향과 독서 기록을 살피며 서평을 귀담아들었다가 다른 독자분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좋아하는 문장을 서점에서 일어난 일과 함께 영수증에 기록한다. 2017년 3월부터 꾸준히 써왔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텍스트를 만나는 즐거움인지 많은 분이 ‘영수증 서점 일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게으름과 맞서 싸워 이길 때만 일기를 바꾸는데, 최근에는 기다리는 분들 덕에 사흘에 한 번씩은 바꾸려 노력 중이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속도를 체감할 수 없는 요즘, 반복되는 공간에서의 서점 업무로 풀리지 않는 숙제를 들고 어떤 선생님을 만나야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도서정가제 폐지를 눈앞에 두고 이런 독립서점의 존재가 유의미할까.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는 순간, 겨우 지역에 문화를 만들고 있는 독립서점은 삽시간에 사라질 확률이 높다. 겨우 오프라인에서의 문화 활동과 독서 커뮤니티를 통해 지역사회의 선순환을 고민하다가도, 문화 감수성이 없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정책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기분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역을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도 사라져 무언가를 하려다가도 포기하는 마음이 더 크다. 이게 지금껏 살아왔던 삶과는 다르기 때문에 서점의 미래를 비롯해 내 삶을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다가도 아주 작은 종이에 겨우 스케치를 하는 느낌이랄까.” - 서점 일기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중에서
“슬픔과 외로움의 경계에서 감당하지 못할 감정으로 가득 찬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느낌의 공동체』,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이은 세 번째 산문집은 시대의 슬픔을 기록하고, 슬픔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한다. 서로의 ‘결여’를 교환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관계에 대한 고찰 외에도, 커뮤니케이션에 무능한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 권력에 대한 집착, 유행어를 통한 세태 관찰 등 문학 작품 이외의 세상 전반을 고찰하는 저자의 ‘정확한’ 시선을 통해 우리는 더욱더 깊어진 신형철 평론가의 생각과 문장을 만나게 된다.” - 서점 일기 “믿음, 소망, 사랑을 나누는 서점원이 될 거예요.” 중에서
“‘밀리언 셀러’가 아니라, ‘헌드레드 북스’를 목표로 한다. 한 독립서점에서 백 권의 책을 팔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점의 큐레이션을 믿고 책을 구매하는 단단한 독자층이 형성되어야만 가능한 이야기지만, 출판사가 초판 양을 점점 줄여가는 시대에 조금이나마 탄력을 받아 중쇄를 찍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약 1,500-2,000부의 책을 초판으로 찍어낸다는 가정에서, 전국의 약 20개의 독립서점이 초판본 100권을 각각 판매한다면 출판사와 작가의 삶이 보다 지속 가능한 삶으로 바뀌지 않을까. 그 사이에서 독자와 서점은 단단한 관계를 만들어가며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서점 <다다르다>는 한 종의 책을 100권씩 팔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직 100권이 팔린 책은 나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나올 책이 기대가 된다. 100권이 팔렸을 때는 곧장 작가님께 소식을 전할 건데, 서점에서 사랑받은 만큼 북토크를 제안할 계획이다. 공간에서 사랑받은 책 이야기를 통해 작가를 서점에 초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인지도가 높지 않더라도, 각 서점마다 사랑받는 작가가 나오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즐겁고 재밌다.” - 서점 일기 “독립서점에서는 어떤 책이 잘 팔려요?” 중에서
서점원 김준태
김준태(도시여행자X다다르다 대표)
서점원이자 기획자이다. 로컬 콘텐츠를 만드는 ‘도시여행자’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책을 골라주는 서점원도 멋진 직업이지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매니저에 가깝다고 느낀다. 짧은 대화로 서로의 삶을 풀어내며 교감하고 있는데, 책을 통해 사람을 연결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다. 책과 서점을 통해 동네마다 즐거운 일이 가득하면 좋겠다. 그 사이에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해내며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