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르다 서점일기 #53 택배
1. 많은 분들이 서점원의 직업은 앉아서 책을 고르거나 공간에서 손님을 응대하며 책을 계산하는 정도의 지식 서비스업 정도로 바라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 (다다르다는 택배 박스가 잔뜩 쌓여 있으니 적나라하게 보이는 곳)에서 포장된 책 박스를 나르고 책의 훼손 상태 확인과 서가 진열까지의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하필 계단이 있는 2층에 책이 잔뜩 있어서 택배 박스를 나르는 일이 다른 곳에 비해 더 힘든 것 같다. (물론 대형 서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중에 책의 띠지가 훼손되거나 박스 사이에 공간이 생겨 책이 박스 안에서 한바탕 춤이라도 췄다면, 대부분의 책은 다시 박스를 타고 물류창고로 가야 한다.
2. 하루에도 열 개 내외의 택배 박스를 전해주는 기사님의 삶을 어렴풋하게 짐작하게 된다. 어느 날에는 목이 너무 탄다며 시원한 물을 세 잔이나 들이켜고는 이제야 살 것 같다며 커피 바에 잠깐 기댄 몸이 안쓰러울 때가 있었다. 식사는 제때 하시냐고 묻는 질문이 오히려 눈치가 없어 보이는 사람으로 느껴질까 봐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나야 박스를 나누어 2층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 되지만, 기사님은 보통 열 개의 박스를 두 번에 나르고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버린다. 몸에 실린 책의 무게가 감당이 되는 걸까.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너무나도 다르다. 주제넘는 이야기지만, 조금이나마 힘을 덜어드리고 싶고 잠깐이나마 시원한 바람이나 커피 한 잔이 노동의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3. 어느 순간부터 택배 당일 발송과 익일 수령의 방식에 회의감이 들었다. 우리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보편적으로 택배가 이틀 또는 사흘 정도 걸리면 어떨까. 신선 식품을 제외하고는 하루가 걸리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최근 한 택배 회사의 젊은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인명 사고의 원인을 알면서도 회사의 경영이 일 순위인 시대의 속도에 맞추려다 보니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 가장 아래에서 헌신하는 희생자가 삶의 속도와 무게를 짊어지고 먼저 떠난다.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하늘나라로 떠나도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 (아참. 택배 없는 날을 만들 것이 아니라, 당일 발송 원칙을 더 느슨하게 바꿀 수는 없는 걸까.)
4. 서점 업무를 위해 이 층에 머무를 때, 기사님은 택배를 일 층에 잔뜩 쌓아두고는 인증샷을 남겨 문자로 보내주신다. 아마도 전산 시스템을 통해 자동으로 보내는 메시지인 것 같은데, 사진만큼은 그때마다 다르다. 오늘은 겨울 햇살이 서점에 가득 들어왔을 때, 기사님이 햇빛 아래 놓인 택배 박스를 사진으로 남기셨다. 택배 기사님도 햇살을 느끼며 커피 한 잔 마시며 쉬어가는 노동 환경이 되면 좋겠다. 우리도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그런 사회 (?)에 살고 있지 않은가.
5.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의 강연 자료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시티페스타에 연사로 초대받았던 은유 작가님의 <알지 못하는 아이> 책에 나오는 학교다. 여전히 모르는 세상 투성이다. 사회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져 귓가에 맴돌지 않는다. 우리가 주변에 귀 기울이며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함께 고민하며 바꿔보자고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시기다. (서점원 라가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