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점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라가찌 Mar 04. 2020

자전거로 책을 배달해드려요

다다르다 서점일기 #16 자전거로 책을 배달해드려요 

@서점 다다르다 , 대전 은행동 


1.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변화를 느낀다. 원도심의 오래된 골목과 서점, 책과 자전거, 서브컬처.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도 하나같이 아날로그 감수성이 풍부한 것들이다. 세상을 더 즐겁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과 같이 움직일 수 없는 사회 구조가 되었을 때는 대처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꿈은 많은데 욕심은 별로 없다 (?) 동네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독서 공동체와 창작 공동체, 주거 공동체를 이루며 재밌게 살아가는 동네를 만드는 것.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필요한 시점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2. 디지털 감수성이 너무도 부족했다. 책방을 찾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어 고맙지만, 지금과 같은 시기에서는 누구라도 외출을 자제해야 하기 때문에 서점 운영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 다시 온라인 서점으로 주문량이 급증할 것이 예상되는데, 정작 온라인 서점을 구축하지 못했기에 소비를 권할 방법도 마땅히 없다. 너무 아날로그 감성만 쫓다보니 부족했던 부분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3. 교토로의 서점 여행을 다녀온 후, 약 한 달간 서점에서 혼자 일하고 있다.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지금껏 함께 일했던 구성원과 일상적인 대화로 아이디어를 만들고 실행해 왔는데, 정작 혼자가 되니 무언가를 결과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하게 느껴진다. 내게는 마땅한 능력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무기력하고, 무언가를 기획하고 표현하려 해도 결국 디자인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여기서 숨이 턱 막혀 버린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자니 완성도가 높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온라인으로 표현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라서 곧장 포기해버린다. 그래도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감정을 애써 감추지 않는 것. (이게 도움이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여전히 서점 일 층에 대한 의구심으로 공간을 바라보고 질문하는 이들이 많지만, 당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애써 명쾌한 답을 찾지 않으려 한다. 


4. 날씨가 풀려 자전거를 타고 몇 군데 책 배송을 다녀왔다. 먼 거리에서 주문해주신 책은 어쩔 수 없이 택배로 보내드리고, 페달을 굴려 갈 수 있을만한 거리는 최대한 돌아다녔다. 자전거로 책을 배송한 것은 이전 서점에서부터다. 대흥동을 비롯한 원도심은 경사가 많지 않아 자전거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기가 편하다. 가까이에 사는 이웃들 중에는 공간을 지키는 이들이 많아 잠시라도 문을 닫지 못하곤 했는데, 그들을 위해 동네를 산책할 겸 자전거를 타며 책을 배달했다. 왠지 책의 아날로그 감성과 자전거가 묘하게 조화로웠고, 신나는 표정으로 자전거에 내려 책을 가져다 드리면 더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잘못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  


5. 이전 서점에서 부동산 문제로 쫓겨나 새로운 공간을 찾을 때, 대흥동에 이미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써 대전을 고집하지 않는 것은 어떨까', '대전과 타 지역의 자원을 잇는 역할은 놓치고 싶지 않지만, 당장 대전이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상상한 적이 있다. 다른 도시에서의 협업 제안도 있었고, 지역에서 마땅히 방법을 찾지 못해 서울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서울에서 서점을 한다면, 지역 주민을 타겟팅하지 않을 수 있어 다른 꿈을 찾다가 명확해진 꿈이 있다. 서촌에 서점을 내고 청와대에 책을 배달하는 것 (지난 해, 문재인 대통령께서 세대 교감을 위해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 책을 전 직원에게 선물했던 적이 있다. 나는 뉴스를 보고 ‘청와대는 어디서 책을 사는지’가 더 궁금했지만) 


6. 모쪼록 몸과 마음 잘 챙기며, 반갑게 만날 날을 기대하며 살면 좋겠다.   


7. "마음이 무너지게 두지 마세요. 상처와 좌절이 항상 나를 강하게 만드는 건 아니에요.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 일에 있어서만 좌절하고 그 사실에 대해서만 혼나세요. 팩트에 감정을 더해서 스스로 책망하거나, 좌절하면서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마세요" 

『컨셉진 #76 당신은 일기를 쓰고 있나요?』컨셉진 중에서 -


8. "어딜 가서 살아도 적당히 불행하고 적당히 행복할 것이다. 대단히 희망에 찬 깨달음은 아니지만 적잖은 위안이 된다"

@appetite_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 달 서점 월세는 절반만 내세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