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르다 서점일기 #20 민낯
1. 가지고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는 가치를 뻥튀기하는 것이 높게 평가되지 않던가. 잘하는 것이 없기에 더 큰 자격지심과 이상적인 삶을 그리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는 무던해지지 않으려 노력했고, 가치있는 삶이라 믿으며 지내왔다. 결국 한 순간 무너졌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가치있는 일일까. 벌써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주변에 남은 사람이 많지 않다. 더욱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더 멀리 떠났고, 결국 혼자 남았다.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인지 이제서야 겨우 되짚고 있다. 가고 싶은 길이 많았지만 무거운 짐이 많았는지 내려놓기를 반복했고, 결국 방향마저 잃어버렸다.
2. 날이 좋아 자전거를 타고 책을 배달했다. 날이 좋았다는 것은 덧붙이는 이야기고, 책이 도착해서 빠르게 가져다 줄 마음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달렸다. 한 손에는 걸려오는 전화를, 한 손으로 스트라이다를 탔더니 결국 큰 사고가 날 뻔 했다. 어두운 유리창 너머로 보이지도 않는 얼굴에 고개를 몇 번이나 숙였다. 서로 부딪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부딪히지 않아서.
3. 조용한 공간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손님들의 태도가 느껴질 때는 고맙고, 즐겁다. 타인에게 방해가 될까봐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모습에 피식 웃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책을 찢을 줄을 모른다고' 권나무 뮤지션이 노래했지만, 그래도 확률상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이들이 방문할 때 서점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4. 온라인으로 대학교의 수업이 열린 걸까. 급하게 전공 서적을 찾는 다급한 마음으로 책이 있냐고 묻는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 독립서점에 대학교 전공 서적이 있을리가 없잖아. 심지어 책 제목이 <헌법학>, <미적분학>, <해부생리학>의 재고를 물어왔다. 생전 처음 듣는 책이다. 심지어 본 적도 없다. 독립서점의 성격을 충분히 파악하고 전화하면 서로 피곤하지 않을텐데. 구매하고자 하는 책을 찾아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함께 전하려니 힘이 빠진단 말이다.
5. 민음사 유튜브 채널을 몇 개 돌려봤다. 편집자와 북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다양한 북튜브 채널이 생기면 좋겠다. 아참, 같은 동네에 있는 '가까운 책방' 이 유튜브를 시작했다. (다들 구독해주세요)
6.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태복음 13장 4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