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다다르다 서점일기 #26 봄의 작별인사

by 라가찌

1. 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불의의 사고로 작별인사를 해야만 했던 계절이 돌아왔다. 사랑하는 이의 숨결이 기억나지 않는다. 눈 앞의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만큼 먹먹함이 밀려온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용기내어 살아가야 하는 걸까. 공소시효가 일 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떠나간 이들과 남은 가족, 함께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방법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있는 그대로 사실 관계가 밝혀지기를 바란다. 조금이나마 슬픔을 함께 나누려는 태도를 보태어.


2. "곳곳에서 꺽꺽거리는 여학생들의 비명 섞인 울음이 터져나왔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설○○ 학생은 자신이 빠져나온 비상구를 돌아봤다. 항공구조사 권재준이 출입문 바로 앞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잠수복을 입은 항공구조사가 “물살에 휩쓸려서 들어간 친구들을 구하러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무 명이 넘는 여학생들은 서로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한 학생은 진정하지 못하고 우는 친구를 끌어안았다. 누군가 울먹이며 말했다. “나만 나왔어!” <세월호, 그 날의 기록>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진실의 힘


egW84C78zak8RBRfkXUlYXNNruY.jpeg 2015 안필드 Anfield, Liverpool


3. 세월호의 4월 16일과 닮아 있는 슬픔이 있다. 1989년 4월 15일, 영국에서 일어난 힐스보로 참사 이야기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내용인데, 매년 4월이면 영국에서는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에는 전 세계로부터 슬픈 감정을 나누려는 이들이 경기장 주변을 맴돈다.

5년 전, 아내와 리버풀을 여행할 때 영국 당국의 입장 발표가 있었다. 과거 팬들의 무질서함이 참사를 만들어냈다는 발언을 유지하던 경찰 당국은 초기 대응과 질서 유지를 하지 못했던 과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오늘 힐스보로 참사가 일어난지 31년째가 되는 날이다. 과거의 사람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순간들로 일상을 보낸다.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You'll never walk alone.


4. 힐스보로 참사.

1989년 4월 15일, 24,000여명의 리버풀 원정팬이 경기를 참관하기 위해 힐스보로 경기장으로 떠났으나 96명의 팬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힐스보로 참사는 영국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억되며 어느덧 2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고 있던 96명의 팬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던 그 날, 이 세상에 희생된 팬들의 얼굴을 기억하기를 원한다. 우리에겐 사랑스러운 아빠, 아들, 형제, 사촌 혹은 할아버지였거나 남자친구, 남편 또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이들 96명이 가족과 친구들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났다. '96명의 희생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들이다.


힐스보로 참사 20주년이 있던 날,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둔 미망인의 감동적인 편지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여러분, 제 남편은 사고를 당했던 96명의 희생자 중 한 명이지만 저와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최고의 남편이자 아빠였습니다"


힐스보로 참사 기념비에 새겨진 수 많은 이름으로 존재하는 이들을 아직 잘 모르는 팬 여러분, 24,000장의 경기 입장권, 23곳의 회전문,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초만원 상태의 경기장 펜스 두 곳, 96명의 사망자와 766명의 부상자들. 단순히 실스보로 참사에 기록된 숫자로는 리버풀과 평생의 아픔이 따를 팬들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없다. 96명의 희생자,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희생자들의 행복했던 순간을 담은 사진은 우리가 왜 1989년 4월 15일에 일어난 참사와 그 날 돌아가신 모든 희생자를 절대로 영원히 잊어벼러서는 안되는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 최용석 번역>


26th.jpg @LiverpoolFC Official



매거진의 이전글맛있는 커피를 내어드리는 서점원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