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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가찌 May 30. 2020

도시의 낭만을 위해 서점을 열어요.

다다르다 서점일기 #31 서점원의 역할

@다다르다 , 대전 은행동 


서점원의 역할

다다르다는 지역에 다양한 삶이 표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점을 운영해요. 2011년 10월, 대전 원도심에서 '지역을 안내하는 여행자 카페'와 문화예술 향유를 위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문을 열었어요. 전반적인 산업이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에서 지역 주민들도 대전을 떠나지 않고 다양한 문화를 즐길 환경이 필요했지만, 콘텐츠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콘텐츠를 생산하는 입장에서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무언가를 지속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모든 것이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사회 구조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많은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살아요. 좋아하는 것을 통해 생산과 소비의 경계를 허물고, 콘텐츠 기획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는 즐거운 실험이 이루어지기를 바랐어요. 


서점에서는 독서 모임과 취향 모임을 통해 느슨한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북토크와 뮤지션의 공연을 즐기는 여행 페스티벌로 확장되었어요. 지역에도 즐길만한 콘텐츠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삶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어요. 지역에서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을 고치며 변화를 주기 시작했어요. 


책을 고르고 권하는 '서점원'의 역할도 있지만, 지역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매니저'의 역할도 함께 해내고 있어요. 독자의 도서 구매 기록과 일상에서의 대화를 꼼꼼하게 살피면서 다음에 읽을 만한 책을 권하기도 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면 좋을만한 다른 독자를 소개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요. 책을 매개로 생산적인 대화가 오가는 순간을 경험할 때, 서점원이 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각자의 꿈과 노력을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존재가 되기도 해요.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없지만, 각자 사회의 위치에서 마땅히 역할을 해낼 때 다른 이가 전하는 응원의 마음을 느끼면 마음이 평안해져요. 더 나아갈 수 있는 동기가 되고요. 지역에서는 이렇게 서로를 응원하며 지내는 느슨한 연결이 필요하거든요. 


@다다르다 , 대전 은행동 
@다다르다 , 대전 은행동 


영수증 서점일기

다다르다는 독서량이 많은 독자보다는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서점이에요. 읽고 싶은 책이 가득한 독자는 책을 선별하는 큐레이션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오히려 일상에서 독서하는 습관을 가지지 않은, 이제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독자에게 재밌는 책을 발견해주는 기쁨을 나누는 역할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가볍게는 세 가지의 키워드를 알려주면, 세 권의 책을 골라드리는데 많은 분들이 즐거워해요. 요즘 온라인 서점에서도 추천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지만, 오프라인 서점에서 얼굴 마주하고 좋아하는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상황과 누군가 자신을 위해 책을 골라주는 경험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영수증에 꼬박 서점 일기를 써요. 책을 읽지 않는 분들께 독서의 즐거움을 전할 방법을 찾는 중이었는데 영수증 하단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2017년 3월부터 시작했는데, 게으름과 맞서 싸워 이길 때만 영수증에 일기를 바꾸고 있어요. 서점원으로의 삶은 어떤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서점을 운영하는지 자연스럽게 전하고 싶었어요. 영수증에 쓰는 서점 일기를 기다리는 분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서, 글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해요. 


@다다르다, 대전 은행동 


책 생태계

서점을 운영하며 고민이 생겼어요. 서점을 처음 열 때 했던 '책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벌써 10년 가까이 서점 운영을 비롯해 문화예술 기획을 해왔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요. 최근 대전에는 22개의 독립서점이 생겼어요.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서점이 생겨난다는 소식은 얼마나 반가운 일이에요. 멀리 내다보면 너무 반가운 이야기지만, 독서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는 마음이 저려오는 것이 솔직한 감정이에요. 늘어나는 서점만큼 독서 인구와 출판물도 늘어나야 하는데, 서점만 늘고 있는 상황이 아쉬워요. 그래서 지난해부터는 '독립출판학교'와 '독립출판마켓'을 기획했어요. 독서를 비롯해 창작에 관심 있는 독자를 모아 출판 과정에 대해 학습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열렸어요. 아주 작은 프로그램이라도 꾸준히 열어볼 계획이에요. 결국 출판물이 늘어나지 않으면 독서 인구는 늘어나지 않을 테고, 작가와 서점의 지속 가능한 삶도 꿈꿀 수 없는 거잖아요. 지역에 다양한 삶이 종이와 텍스트로 표현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내고 싶어요. 다른 이의 삶에도 작은 관심을 가지며 다양한 삶을 존중하는 태도를 나누면 지역 사회가 더 건강하고 따뜻해질 거라 믿어요. 오늘도 이 도시의 낭만을 위해 서점 문을 열어요. 로맨틱 대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이번 영수증 서점일기는 <국회도서관 웹진 2020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 전문은 ( https://bit.ly/월간국회도서관 )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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