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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가찌 May 22. 2020

고독한 서점원의 떡볶이 여행

다다르다 서점일기 #30 고독한 서점원 

지난날에는 부득이하게 서점 문을 닫고 보령으로 출장을 다녀왔어요. 대전 복합터미널에서 보령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17,800원의 비싼 버스 요금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7,800원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1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요금이 이렇게 비싼 것을 보면 심리적 거리감과 버스 요금은 비례하는가 봐요.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낯선 시선과 감각을 선물하나 봐요. 평소와 다른 일상에 들뜬 마음을 추스르며 보령에 도착했어요. 출장길에 홀로 맛있는 밥집을 찾아다니는 이노가시라 고로의 영화 <고독한 미식가>처럼 보령에서 맛있는 무언가를 먹고 싶어 보령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맛있는 집을 물었어요. 그 지역은 현지인이 가장 잘 알잖아요. 친구로부터 전해받은 고급 정보를 토대로 지도를 펼쳤어요. 혼자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메뉴를 찾다 보니, 맛있는 떡볶이가 먹고 싶어 졌어요. 맛있는 떡볶이 한 판. 생각해보니 버스 안에서 기사님 몰래 편의점 김밥과 아이돌 샌드위치 한 개를 먹은 직후였어요. (왜 아이돌 샌드위치일까요. 고칼로리이던데) 


보령 터미널 인근에는 휘휘한 대천천의 물이 흘렀고, 하천 주변에는 정돈된 꽃이 피었어요. 앉을만한 의자가 있었더라면 한참을 있어도 좋을 만큼 예쁜 경치였고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이 인상적이었어요. 서쪽이라 더 붉게 물드는 걸까요. 선명한 저녁노을을 볼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요. (갑자기) 자동차의 통행량이 많지 않은 도로였는지, 인도와 차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오래된 간판을 들여다보며 다음에 꼭 오고 싶다며 다짐했던 밥집을 찾았어요. 생계가 달린 요식업에 이런 상호명을 붙이는 주인장의 모습이 더 궁금하기는 하지만요. 이 집에서는 꼭 한 번 밥을 먹어보고 싶어요. 오래된 간판, 오래된 목욕탕, 오래된 골목. 대학교가 몇 개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젊은 층의 사람들보다는 나이 든 사람들이 눈에 띄네요. 이 도시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궁금해요. 


친구가 좋아하는 떡볶이 집을 찾았어요. 조금 당황했지만 <황가네 호떡>이라는 공간이에요. 호떡집에서 파는 떡볶이는 어떤 맛일까요. 호떡의 꿀만큼 달달함이 돋보일까요? 거리에서는 아주 작은 호떡 매대만 보이는데, 골목 사이로 들어가면 큼지막한 공간이 나와요. 쌀 떡볶이와 밀 떡볶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하수지만, 이 팀이 얼마나 음식과 공간에 마음을 쓰는지는 볼 수 있거든요. 혼자 와도 반갑게 맞이해주는 주인의 태도에 떡볶이 1인분만 시키려 했는데 큼지막한 김말이 2개를 더 시켰어요. 떡볶이 일 인분 삼천 원, 김말이 한 개 천 원. 김말이가 한 개 천 원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김말이가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한 개만 먹자니 서운하고, 고민도 하지 않고 기분 따라 두 개를 시켰죠. (양이 많아 후회했지만)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분들이 떡볶이와 튀김을 포장 주문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안부를 묻는 떡볶이집이군요. 


얇게 채 썬 파와 어묵이 소복하게 담긴 떡볶이 한 접시가 나왔어요. 떡볶이 사이로 보이는 국물을 보고는 맛있는 떡볶이라 직감했어요. 녹진한 정도는 아니지만, 물과는 사뭇 다른 성질의 국물이었는데 재료를 충분히 감싸주고 있더라고요. 천 원짜리 김말이는 역시 제 값을 하네요. 바삭바삭. 이 친구는 이걸로 역할을 다한 거죠. 쫄깃한 당면과 바삭한 튀김옷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뜨거운 기름을 버티다가 금세 튀어나온 김말이의 바삭함. (바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떡볶이 한 접시를 해치웠어요. 무엇을 위해 이 도시에 왔는지도 잊은 채 빠르게 쓱싹했어요. 젓가락과 입이 가장 바빴지요. 숟가락은 거들뿐. 


지역의 오래된 공간이 주는 힘이랄까요. 일을 위해 떠난 출장길에서 만난 떡볶이집이 한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떡볶이지만, 가는 길에 만난 오래된 간판과 골목, 주인의 환대는 어디서나 볼 수 없는 거잖아요. 무엇보다 호떡집에서 맛 본 떡볶이라니. 이름만 호떡집이지, 천국만큼이나 맛난 분식 메뉴가 준비되어 있기는 했어요. 신예희 작가의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있던 중인데 오천 원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떡볶이를 맛보며 돈지랄의 기쁨을 만끽했어요. 



ㅡ 황가네 호떡 대천점

충남 보령시 중앙시장 2길 38 / 041-931-0210

떡볶이 1인분 3,000원, 김말이 1개 1,000원 


@황가네호떡 , 충남 보령시
@황가네호떡 , 충남 보령시 
@황가네호떡 , 충남 보령시 
@해수목욕탕, 충남 보령시 
@버스정류장 , 충남 보령시
@동양여인숙 , 충남 보령시 
@나는조선의불고기다 , 충남 보령시 
@대천천 , 충남 보령시 
@경남사거리 , 충남 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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