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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현 Jun 19. 2019

부슬부슬

어느샌가  비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되었어요.


추적추적, 눅눅, 꾸물꾸물. 비 오는 날 하면 이 단어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비 오는 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일기예보에서 비 소식이 있으면 한숨부터 쉬곤 했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밤부터 비가 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일도 일어나자마자 하늘도 우중충하고 기분도 우울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새벽에 불을 다 끄고 누워있는데, 창밖으로 부슬부슬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새벽이라서 눈앞엔 아무것도 안 보이고, 빗소리 외의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빗소리를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친구에게 비 오는 소리가 너무 좋다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빗소리는 왠지 모르게 안심되는 소리라는 답장이 왔다. 빗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많은 말 중에, 가장 적절한 표현 중 하나인 것 같다. 원래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자곤 했는데, 그 날은 오랜만에 이어폰을 빼고 잠이 들었다.      


그때 이후로 비 오는 날이 조금은 좋아졌다. 부슬부슬. 빗소리를 표현하는 흔한 수식어지만, 적어도 그날 이후로 내겐 특별한 단어가 되었다. 정말 별 것 아니지만, 비를 즐기는 방법을 찾은 것 같으니까. 다음에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창밖을 바라봐야겠다고 혼자만의 계획을 세웠다. 이제 비 오는 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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