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크는 아이라서인지 유독 조용하면서 차분했다. "이런 학생이면 100명이 와도 혼자 감당할 수 있어요"라며 담임을 맡는 선생님마다 빠지지 않고 하는 말씀이었다.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는데 지금 떠올려도 그렇다.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써본 적이 없었고, 여자애를 키우면 다 겪는 다는 옷투정이 없었다. 하루 종일 옷장을 뒤져 옷을 꺼내입고 벗어놓고를 반복한다더니 그런 것도 없이 오히려 갈아입으라고 성화를 하게 했다. 엄마가 없으면 엄마 몰래 안방에 들어가 화장품을 꺼내 삐에로 입을 만든다던데 그런 것도 한 번 없이 컸다. 오히려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아 걱정을 했더니 '별걸 다 걱정한다'며 같은 반 엄마에게 핀잔을 듣게 했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매번 첫학기 첫째 달 반장을 도맡아 와서 반 친구들에게 늘 간식(그때는 반장이 되면 간식으로 한턱 쏘는 일이 가능했음)을 사서 잔치를 하게 했던 너였다. 중학생이 되어 친구들이 화장품을 사서 얼굴이 하얗게 될 정도로 화장을 하고 입술은 모두 같은 색인양 빨갛게 물들였을 때도 너는 한두번 하더니 귀찮다며 선물받은 화장품이 무색하게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일이 허다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머리감고 화장하느라 새벽에 일어나서 부산을 떨며 준비를 하고 알아서 일찍 일어나 꾸미기에 정신없다던데 너는 집에서 아빠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전에 일어나 겨우 아침밥을 챙겨먹고 고양이 세수만 하고 정신없이 교복을 챙겨입고 나가기에 바빠서 머리는 전날 저녁에 꼭 감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아침에 머리 말리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아직도 고쳐지지 않음).
그러던 네가 잔잔하게 넘어가던 사춘기를 터뜨린 건 고2 때였다. 학교에 가기 싫다며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꼼짝도 하지 않았고, 고 3이 되어서는 급기야 병원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 일이 허다했다. 남들은 대학교 입학을 목표로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엄마와 너는 너의 고등학교 졸업을 목표로 학교에 갔었던 것 같다.
코로나로 고등학교 졸업식에 가족들이 참석할 수 없게 되었고, 너는 친구들과 짧게는 3년 간의, 길게는 12년 간의 만남에 안녕을 고하고 씩씩하게 저녁을 먹고 들어왔지. 그때부터였을까. 집에서 칩거를 하기 시작한 시점이.
대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변경되어 학교에 갈 필요가 없어졌고, 시험도 온라인으로 보면 그만이었다. 그런 저런 핑계로 너는 그때부터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고, 급기야 학교에도 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런 날이 하루 이틀이 지나 너의 칩거를 정당하게 만들어주던 코로나로 인해 2년 여를 집에서 두문불출 하고 꼭 필요한 외출만을 하기 시작했다.
일 년 동안 밖에 나간 횟수가 개월 수보다 적었던 것 같다. 꼭 가야하는 집안행사인 어른들 생신과 명절과 제사 등을 제외하면 친구들을 만난다며 아주 가끔 나갔다가 7시가 되기도 전에 피곤하다며 들어왔던 것을 다 포함해도 겨우 개월 수를 채울까 말까.
코로나 새내기이니 그렇게 지낸 지 만 2년이 훌쩍 지났다.
어느날 너는 있지도 않은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며 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했고, 여차저차 해서 한달짜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지. 이제 2주 째. 아르바이트가 확정된 날부터 시작된 너의 외출은 하루도 빠짐없이 2주 간 계속됐다.
퇴근하고 나면 무언가를 사야 한다며 시장으로, 대형맡트, 소형마트로, 다 있는 생활용점으로, 반품샵으로, 모두O인 곳으로, 문구용품점 등 정말 어디를 안 갔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다녔다. 이곳만 간것은 아니었다. 밥을 사준다며 중국집으로, 커피숍으로, 쌀국수집, 돈까스집, 칼국수에다 할아버지 계신 곳에 인사하러 가기까지 많이도 돌아다녔다.
이제 한 술 더 떠서 지역을 벗어나 대전, 광명, 광주까지 가자고 하니 주말이 무서워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2년 동안 안한 것을 한꺼번에 다 하고 싶어서 몰아서 하나 싶기도 하고, 나가자고 스스로 말해주는 것이 반갑기도 했다. 힘들어서 왜 자꾸 나가려고 하냐고 핀잔을 주고싶다가도 그 말이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잔잔했던 시기를 잘 보내나 싶었던 너에게는 유춘기와 사춘기가 아닌 4.5춘기를 아주 혹독하게 보냈던 것 같다. 그런 너를 오롯이 인정하고 이해하고 안아주지 못한 것 같아 서운함을 많이 느꼈을 네가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 싶다.
아직 다 지나지 않은 너의 4.5춘기를 잘 보내주길 바랄게. 그렇게 혹독하고 처참하게 앓고 나면 너에게는 개운함이 찾아올거라는 생각이 든다. 깜깜한 터널을 지나 조그만 햇살이 눈에 들어온다면 그게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신호가 아닐까. 정말고생했다고, 수고 많았다고 어깨를 쓰다듬어 줄게. 너의 방황을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