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는 꽃분 씨

그 많은 김치는 어디로 사라질까?

by 정아

겨울 김장을 할 때 쓰려는 소금을 3년 전부터 구입해서 쟁여놓으셨다. 그렇게 미리 좋은 소금을 사들여서 볕이 들지 않는 창고에 쌓아두고 몇 년을 기다리며 간수를 빼야 한다며 성화를 하시는 시어머니를 말리지는 않겠지만 나보고 하라면 못한다 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간수가 빠지면 가지미를 또 몇 짝을 사 오셨다. 어떻게 군산외항에 가서 사 오셨는지는 모르겠다. 한 번도 사러 가자고 하시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다. 가지미로 젓갈을 담아서 또 그걸 3년 이상을 묵혔다. 그 녀석의 살코기가 다 삭아서 녹아내릴 때까지 푹 묵혔다가 그걸 걸러냈다. 그래야 김장준비를 해놓은 것이 되는 듯했다. 어머니만의 그 과정으로 김장을 위한 특별한 의식처럼 장시간의 공을 들였다.


텃밭에 이것저것 푸성귀를 심어 비가 오면 무를까 걱정이고, 비가 오지 않고 햇볕이 쨍쨍하면 말라죽을까 또 걱정이 한가득 했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수돗물을 틀고 올라가 물을 뿌리셨다.


그렇게 애지중지 가꾼 것들을 지인들에게 참 쉬이도 다 나눠주고 정작 먹을 것은 남겨놓지 않으신다. 가끔 상추라도 뜯어올라치면 밭에 있는 상추는 모두 이발한 듯 멀끔하니 휑하다. 어느새 눈치채셨는지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다.


"내일은 금방 자라서 괜찮으니 뜯어놓을 테니 가져가거라."


상추를 말씀하신다. 며칠 전에는 뜬금없는 김장 이야기를 하셔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 김장은 내가 못 해줄 것 같은데 배추는 얼마나 심을까나?"


배추는 아직 심으려면 몇 달은 있어야 하건만 벌써 김장 이야기다. 배추는 아니고서라도 지금 밭에는 하얗고 포근한 감자가 심어지고 달콤한 고구마를 심는다는데. 그걸 수확한 자리에 배추를 심기도 하던데 벌써 김장 이야기를 하다니. 김장이 시작될 때가 되면 한두 달 전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해마다 김장 때가 되면 직장에 다니는 많은 며느리들은 나 같은 고민과 스트레스를 등에 지고 있을 듯하다. 그런 걱정과 고민을 꽃이 피고 초록이 완연한 시원시원한 봄날에 하게 하시다니.


전화기 너머 벌써부터 걱정을 한 아름 안고 계시는 어머니께 걱정 마시라고 큰소리만 우선 외쳤다.


"그때 되면 어찌 되겠지요. 벌써부터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다 알아서는 무슨. 김치도 제대로 못 담그는 사람이 큰소리는 제대로 쳤다. 이게 무수 날벼락인지 싶지만 그래도 어찌 되겠지 싶었다. 이제까지 김치란 김치는 때 되면 그때마다 담아서 보내셨다. 열무김치. 물김치. 깻잎김치. 알타리김치 고구마순 김치. 파김치. 고들빼기김치, 깍두기 등등 다 기억도 안 날 정도였다.


처음 시댁에 왔을 때 먹을 사람도 없는 집에서 300포기를 담는다는 것에 놀랐다. 사실 형제만 있는 집이라 김치를 먹으면 얼마나 먹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김치는 택배를 타고 서울, 인천. 부산, 대구... 또 어디더라? 모르겠는 곳으로 반 이상이 떠나갔다.


'300포기 그까짓 거'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시골 할머니 댁에서는 600포기 700포기를 담았던 기억이 나서 사실 별 거 아닐 줄 알았다. 해보니 그게 아닌 일이었다. 그때는 정말 3대가 그것도 10집 가까이가 가져다 먹었으니 그것도 그럴 일이었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넓디넓은 마당에 자리 잡고 김장을 했으니 저녁까지 할 것도 없이 빨리 끝났다. 그날은 돼지고기 삶아서 갓 담은 김장김치에 점심을 나눠먹는 마치 동네잔치 같았다. 김장하는 동네 아주머니네 식구들까지도 오는 집도 있었으니 남는 것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헌데 우리 꽃분 씨는 몇 명 되지도 않은 사람 몇 이서만 김장을 했으니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도 다 마치고 나면 깜깜해지기 일쑤다. 허리는 이제 내 것이 아닌 것이 되었다. 허리를 펴다가 나오는 곡소리는 어느새 자동이 됐다.


그렇게 담은 김장김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자에 옮겨져서 어딘가로 떠나보냈다.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걸려오는 전화 통화내용으로 감을 잡을 수 있다.


"오빠, 잘 받았다고요?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맛있게만 드셔요. 호호호"

"언니, 무슨. 잘 받았으면 됐어요. 고생은 무슨. 괜찮아요.^^

"ㅇㅇ아, 잘 지내지? 그래 그래. 내가 살아있으니 이런 것도 보내주지. 언제 또 그러겠냐. 잘 막으면 됐다."


그 외에도 하하호호 한참을 전화를 더 받아야 끝이 났다. 출처가 다 나오고 나서야 꽃분 씨의 전화기는 쉴 수 있게 됐다. 처음 몇 년은 조목조목 어디로 보내는지 알려주시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다음 날 혼자 포장해서 택배를 부르셨다. 그때부터는 미안하셨는지 양도 조금씩 줄어들었던 것 같았다. 직장 다니는 며느리 데리고 김장해서 여기저기 다 보내고 정작 남은 것이라고는 50포기나 되려나?


그런 김장을 올해 4월부터 말씀을 하시니 11월에 해야 할 걱정을 벌써부터 하는 것 같아 불편해졌다. 허리가 아프니 이것저것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어 미리부터 고민을 하셔서인지 부쩍 얘기도 길어지셨다. 생각날 때마다 전화를 해서 설명하셨다.


어머니의 늙음이 이제 바짝 다가와 있음을 실감 나게 해 주신다. 이런 걱정들이 더 빨리 재촉하는 것을. 놓지 못하시니 그걸 말릴 수도 없다. 그러니 하지도 못하는 김장을 두고 '걱정 마세요!'라고 큰소리를 치게 된다.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알았다. 그럼 네가 알아서 해라. 이제부터 걱정 안 한다."


아닐게 분명하지만 일단은 이렇게 김장 사건은 마무리지었다. 부디 내려놓으시고 마음만은 편히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마도 곳 배추 모종을 심었다는 전화를 하실지도 모른다. 전화로 설명하다가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것 같으니 배추가 자리 잡고 예쁘게 자라고 나면 전화로 자랑을 하셨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 배추 보고 어떻게 저렇게 이쁘냐고 물어본다. 크고 이쁘게 잘 키웠다고. 다른 사람들은 썩어서 많이들 버렸단다. 우리 배추가 젤 이쁘고 잘 컸어. "


벌써 들려오는 것 같다.

꽃분 씨는 아무도 못 말리니까.



#일상 #김장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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