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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하 Jul 01. 2022

언제 한 번 들러요.

네, 그럴게요.

너무도 쉽게 생각 없이 내뱉는 습관 중에 하나다.


"언제 한 번 ~"


그 뒤에 붙는 단어는 무수히 많다. 쉽게 툭툭 던져버리는.


들를게.

밥 먹자.

만나자.

술 한잔 하자.

놀러 가자.

바람 쐬러 가자.

00랑 같이 만나자.

조만간 갈게.

....


그중 한 단어인 '들르다'가 마음에 남아있다. 집에서도 생각이 나는 걸 보니 꽤나 신경이 쓰였나 보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수화기 너머 힘이 빠진 낮은 목소리에 걱정부터 앞섰다. 잘 지내시는지, 치매약은 꼬박꼬박 챙겨 드시고 있는지 재차 삼차 확인했다. 식사는 제때에 드시고 약을 복용하는지 다시 물었다. 외출은 잘 나가시냐고 마지막 질문을 하고 나니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힘이 없어서 잘 안 나가지, 내일모레라도 언제 한 번 들러요."

"네, 그럴게요"


대답은 잘한다. '네, 그럴게요'라니 나에게 주어진 여력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낮게 깔린 목소리에 다른 말은 덧붙일 수 없었기에 대답이 우선됐다.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어렴풋이 어떤 분인지, 어디 사셨는지, 집안 분위기는 어땠는지 저 바닥에서 기억 조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두 분이 함께 사는, 서로 챙기고 아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모습이 생각났다.

괜찮다며 잘 지내고 있다고 안심시켜주신 지 몇 달 되지 않았는데. 그새 치매 증세가 나빠진 것이다.


사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이 급격하게 증세가 나빠져서 깜짝 놀랄 일은 많았다. 얼마 전에도 교육받아야 한다며 정신없이 버스를 타고 오신 분도 있었다. 그날은 화요일이어서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 날이었는데 늦을까 봐 부랴부랴 챙겨서 나오신 모양이었다.


"허허, 오늘이 아니라고요?"


돌아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서로 눈빛만 교환했다. 처음이 아니었으니 걱정이다.


당신이 들른다고 하시더니 마지막에는 직접 찾아오신다고 하셨으니  내일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말이 오고 갈지 준비한들 일부는 잊어버리시니 소용은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하겠다.


이틀 전에는 미리 안내하고 약속이 되었기에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심하지 않아 방문을 그대로 진행했다.

1층에서 인종을 누르고 올라가니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방문객인 우리를 위해 살짝 열어놓으신 듯했다.

날씨 탓이었을까?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이 낯설어하는 모습이 익숙한 듯 익숙지 않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거부당한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을 거의 매일 받고 있는 가족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상처로 남을 것인지  그것도 마음이 쓰였다. 오늘은 기억하고 내일은 "누구신지?" 라며 되묻고.

금방 밥을 먹고도 배고픈데 밥도 안 주고 굶긴다며 생떼를 쓰기도 하고.


점점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다. 지금 그대로 유지만이라도 하시길 바라본다.

두 손 꼭 잡고 지금처럼만 행복하세요.


당신을 응원합니다.


#치매 #노인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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