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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하 Sep 04. 2022

기억의 회상

기억창고의 오류

"전화번호가 어떻게 돼요?"

"글쎄요. 남편한테 물어봐서 알려줄게요."

"휴대폰 들고 계시는데 전화번호 0000-0000번 맞으세요?"

"갑자기 물어보니까 기억이 안 나서... 우리 남편한테 물어봐서 알려주면 안 돼요?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을 때가 간혹 있다. 자신의 전화번호도 기억나지 않아 잠깐 생각이란 걸 해야 떠오를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분은 그런 잠깐의 깜빡거림이 아니었다. 치매 증상으로 기억기능이 저하되어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남편을 불러서, 남편에게 전화해서 물어봐야 한다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손을 꼭 잡고 노력했다. 웃는 얼굴도 유지하면서 대답했다.


"갑자기 물으면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잖아요. 지금 그렇게 갑자기 물어보니까 내 번호가 기억나지 않네요."


60대 후반의 나이에 "치매"라는 병을 얻게 되었고, 기억이 자꾸 가물거려 평소에 하던 일들이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주방에서 밥을 하다가 잠깐 들어갔다가 밥을 올려놓은 것을 잊어버렸나 봐요. 가스에서 솥단지가 까맣게 타서 불날 뻔해서 이제 밥하는 것도 못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

"엊그제는 가스에 찌개를 올려놓고 잊어버려서 냄비가 빨갛게 돼서 집에 불나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랬는지.... 이제 밥도 못해먹고 매일 하던 일도 못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어째야 할지 모르겠어요."


평상시에 하던 일을 이제는 하지 못하게 돼서 남편한테 밥도 해줄 수 없게 됐다고, 살림도 못하게 될 것 같다며 고개를 떨구셨다.


운전면허증 갱신을 위해 방문하는 어르신들은 한껏 긴장하고 오신다. 만 75세 이상이면 운전면허증 갱신을 하기 위해 인지선별검사를 해서 정상 군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즉, 운전을 하기에 안전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인지선별검사(치매검사)를 통해 일차적으로 검사를 하고 정상 군이 아닐 경우에는 2차적으로 병원에서 운전이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아야 운전면허증 갱신이 허락된다. 많은 어르신들이 "귀찮은 것", "번거로운 것", "운전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짜증을 내며 들어오시거나 심지어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알고 계시기에 "이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라고 내가 여기서 이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며 혼잣말을 하시며 돌아가는 분도 있다.


일부러 귀찮게 하기 위한 것도, 운전면허증을 갱신해주지 않기 위해서도, 운전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아닌 것을 당신들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운전을 하지 않으면 생업에 어려움이 있는 분도 있었다. 트럭으로 물건을 이송하는 일을 하는데 운전면허가 정지되면 먹고 살 일이 까마득하다고, 손주를 키워야 하는데 돈 들어올 곳이 없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처음부터 엄청 긴장을 하셔서 목소리가 떨렸다. 성함을 적고 서명을 하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어르신은 안색이 환하다. 다행히 정상 군으로 나왔다는 것을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더 안심이 되고 다행이라며 좋아했다.


검사를 하러 오는 내내 얼마나 불안했을까? 운전을 직접 하고 오셨을 텐데 신호등은 제대로 보였을까? 면허증을 갱신하지 못하면 어떻게 살아갈까? 불안에 떨면서 오는 내내 긴장 속에서 오셨을 텐데 얼마나 다행이던지.


이런 일이 매번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발생하는 일이었다. 어떤 때는 큰소리가 나서 밖에서 기다리시던 분들이 어리둥절해서 수군거릴 때도 있었다.


"나는 정상인데 무슨 이런 것으로 평가를 해"

"내가 무슨 치매검사를 받아야 된다고 그래!"

"이 사람들이 운전을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구먼"

"누가 이런 걸로 알 수 있어"


대부분은 인정하고 돌아가지만 정말 인정하기 싫은 분은 큰소리로 묻고는 하셨다. 아니라고 돌아가셨다가 몇 달 후에 지원되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진단서를 가지고 오시는 분도 있다.


"몇 달 전에 약을 미리 드시기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아주 나빠지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너무 화가 나고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에 억울하기도 하겠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기에 빨리 치료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으로 미리 치료를 했더라면, 나빠지는 정도가 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안타까운 마음과 아쉬움이 같이 들었다.


어렸을 적 시골 동네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동네 할머니 한분이 노망이 나서 이상해졌다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서인지 기억이 깜빡거리는 게 그냥 건망증 같지만은 않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 나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할 수는 없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건강 #치매 #기억력 #치매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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