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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하 Feb 07. 2023

자식보다 소중한 친구

파스 친구

파스 친구를 아시나요?  

   

저녁이 되고 거실 통창 너머로 햇살이 비추지 않으면 어둠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한다.

짙은 암흑 속으로 넘어가기 전 거리의 네온사인이 환하게 비춰주면 만상에 빠져들어가기 시작한다. TV는 혼자서 들려줄 말이 많은지 쉼 없이 떠들어 대고 밖에서는 술을 한잔 걸친 듯한 젊은 남자들의 목소리가 제법 커졌다. 조그맣게 들려오던 TV 소리는 크게 들리기 시작하고 밖에서 들려오던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거리의 네온사인은 하나씩 꺼지기 시작하면 짙은 어둠이 거실 통장으로 스며들었다. 지금부터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창문을 열고 생각에 잠겼다 다시 정신을 차린다. 이렇게 사라지기에는 자식들에게 너무 크나큰 상처를 남기게 될까 봐 염려스럽다. 어디가 좋을까 어떻게 사라지는 것이 좋을까 수없이 생각하고 생각해 보지만 적당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둑방길에서 바다가 좋을까. 길에 쌩하게 달리는 차에 뛰어드는 것이 좋을까. 거실 통장 너머 저 아래가 좋을까.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어줘야 자식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좋은 명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도 고민에 빠진다. 어떤 모습으로 남겨져야 좋은 모습이 될까. 생각이 많아서인지 어젯밤에 먹은 수면제도 효과가 없다.


생각에 잠겨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거실 통장 너머로 미세하게 환해지기 시작한다. 그제야 눈이 가물거린다. 서서히 잠으로 빠져들어 간다.


긁적긁적

긁적긁적


겨우 잠이 들었는데 등이 가려워서 깊은 잠에 빠져들지 못한다.


부스럭부스럭


불청객이 찾아왔다. 등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두리번거린다. 거실 탁자 위에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지척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김 씨 있어?"

"아침 일찍 어쩐 일이세요?"

"나 이것 좀 등에 붙여줘. 아파서 잠을 못 잤어."

"어디요? 여기요?"

"응응 그래 거기."

"옛다! 탁탁!"

"이제 살 것 같아. 김 씨 고마워."

"별말씀을요."

"파스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언제든지 오세요."


파스의 시원함이 등에서 스르륵 퍼져간다. 조금 살 것 같다. 등이 가려운 건 해결할 수 있지만 아픈 곳에 파스를 붙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별의별 방법을 다 시도해 봤지만 헛수고였다. 파스를 바닥에 올려놓고 누워도 보고 벽에 붙여놓고 등을 대기도 해 보지만  제 곳이 닿지 않는다. 매번 실패다. 경비실 김 씨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파스 친구가 됐다. 자장면도 시켜서 같이 먹고 얘기도 나누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다. 파스를 들고 창을 두드리면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한다.

우리는 파스 친구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잘 나가는 자식보다 낫다. 가끔 전화해 주는 친구보다 낫다. 옆에서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 좋다. '파스 친구'처럼...


석양이 물드는 겨울


#친구 #노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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