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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하 Nov 08. 2023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하기를

기억저장소 만들기

외부 일정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모니터에 붙여진 노란색 메모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김 00님 보호자 급하게 상의할 일 있으니 연락 주세요."


이미 외근 중에 0톡으로 받은 메시지는 급한 일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잠시 시간을 내어 연락을 했었더랬다. 점점 보호하고 돌보기가 쉽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어떻게 할지 상담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조금은 깊이 있는 상담이 될 것 같아 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가 자료를 찾아본 후 다시 연락드리기로 했다.


메모지에 적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보호자가 집에 없는 사이에 어떤 일들이 발생한다고 했지만 자세히는 설명하지 않았다. 전화로 얘기하기가 편치 않은 듯 한 번 집에 오면 좋겠다고만 했다. 남편이 직장에 나가서 집에 혼자 있는 긴 시간 동안 아내는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 이런저런 일들이 벌여지려니 추측만 했다. 가장 큰 염려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잦아질까 봐 직장에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배우자의 안전을 위해서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고 싶다고 했다. 더 이상은 혼자 있게 둘 수 없는 상태가 된 듯했다.


처음 상담을 왔을 때부터 1년 하고 6개월이 지났다. 두 분을 처음 만났던 날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남성 뒤에서 주춤거리며 따라 들어오던 여성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시선을 회피했다. 조금 떨어져 멀찌감치 서서 사무실 안에 있던 누구와도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불만을 토로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들려오는 내용으로는 아내가 치매진단을 받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상담을 하러 온 듯했다. 뒤에서 주춤거리며 따라 들어오던 여성은 앞서 들어온 남성분의 배우자였다. 아직 나이가 60세가 채 되지 않았다. 


아내를 돌봐야 하는 남성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 모든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으니 마음이 답답했다. 아들 내는 서울에서 살고 있으니 자주 만날 수 없다. 당연한 듯 배우자의 돌봄은 남편의 몫이었다. 


매번 찾아가 만날 때마다 새로운 듯 인사를 하고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듯 거리를 두었다. 한 달 전에 보고 다시 봐도 또 새롭게 인사를 하고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면 그제야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렇게 만날 때마다 누군가 소개를 하고 어디서 왔는 지를 설명하고 인사를 나눴다. 이제는 설명해도 몰라볼 수도 있다.


수십 년을 함께 해 온 배우자의 얼굴과 이름을, 가족과 행복하고 소중했던 순간들을 기억하기를.

일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기억하기를...



#치매 #기억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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