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별하 Nov 10. 2023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기억저장소 만들기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신호가 바뀌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에서 오는 길인지 이곳이 어디인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한참을 둘러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먼산만 바라봤다. 


큰 사거리 횡단보도 앞 신호등에서 한참을 서있지 않았다면 벌써 집에 도착해서 더위를 식힐 시간이지만 아직도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기억을 찾아 헤매었다. 큰 사거리를 지나 두 번째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바로 집이었다. 평소에는 걸어서 20분 정도면 충분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다시 두리번거렸다. 아직도 왜 여기에 서 있었던 것인지 의아해하며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자 횡단보도를 건너 집으로 향했다. 두 번째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늦게 도착한 남편에게 아내는 '왜 이제야 왔냐'며 핀잔을 퍼부었다. 마땅히 대답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으응 좀 늦었어.'라고 얼버무리듯이 대충 대답했다. 젊어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호탕하고 성격 좋은 덕에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었다. 


지금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행여 내 병명을 알게 될까 두려웠다. 혹시라도 사람들 앞에서 실수라도 할까 봐 걱정이 앞서 만나기라 꺼려졌다. 점점 주위에 사람들이 줄어들어 갔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행복하고 즐겁지만은 않는 순간이 간혹 생기기 시작했다. 숨길 수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비밀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쉽지 않다. 실수가 잦아지고 멍한 시간이 많아졌다. 심지어 거실 화장실 앞에서조차 해멜 때가 있다. 방에서 나와 화장실에 가다가 왜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가 실수를 하기도 했다.  간직하고 싶은 기억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쳐지도록 무서워졌다. 모든 게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의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희미해졌다.


#치매 #기억 #사회복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