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
얼마 전 주말에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기차여행 가는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기차표 예매는 남편이 미리 선물로 보내줬으니 시간 맞춰 기차역으로 나가기만 하면 됐다. 기차역에 당도해서 커피도 마시고, 멀리 철로를 향해 인증사진을 남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직장 때문에 타지로 가게 된 남편 덕분에 요즘 기차 탈 일이 생겼다. 어릴 적 버스를 잘 타지 못하는 나는 이동 수단으로 기차를 선호해서 타 지역을 방문할 일이 생기면 무조건 기차를 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경주로 떠난 수학여행기간 동안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이틀 내내 멀미로 고생했다. 교감선생님께서 맨 앞 옆자리에 앉혀놓고 시시때때로 괜찮은 지 쳐다보고 약 먹이고 그러셨다. 덕분에 경주 수학여행지로 유명한 곳은 한 곳도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차 안에서 아이들 구경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얼굴이 하얗게 떠서 거의 쓰러진 채로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간다는 결정을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오랜만에 기차여행을 하면서는 예전(한참 전이라 기억이 가물거리는)에 자주 타고 다녔던 그 느낌과 다른 무엇들이 생겼다. 기차표 예매를 하는 절차도 달라졌다. 기차역에서 혹은 온라인으로 예매를 하고 기차표를 받았던 것이 이제는 기차표도 모바일로 휴대폰 안에 있다.
환승역에서 기차를 갈아타는 과정은 너무나 낯설고 복잡했다. 앞 열차와 뒤에 열차를 잘 못 타면 안 된다느니, 탑승장 번호가 15분 전에 알려준다거나, 대기실로 나가서 탑승구를 확인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너무도 번거롭고 위태로운 행보였다.
이렇게 적고 보니 아주 오래된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못할 것 같은 그런 사람이 된 느낌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느꼈던 것은 사실이었다.
쌀국수를 파는 가게에서, 우롱차를 파는 카페에서 키오스크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자주 갔던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문 앞에 설치된 커다란 기계 앞에서 잠시 ‘멍’ 하니 서 있었던 그날, 직원은 나에게 다가와 ‘주문 도와드릴까요?’라고 했다. 익숙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갑자기 나를 맞이한 키오스크에 당황해서 한순간 꼼짝하지 못한 채 서 있던 그날의 기억이 스쳐갔다.
대형마트 식당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어른의 키보다도 큰 기계 앞에 흰머리가 가득한 어르신 두 분이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며 당황해하던 모습에 주문을 도와줬던 기억이 잠시 스쳤다.
“기차역에서 탑승칸을 찾아가며 두 개의 열차 번호에 당황해서 이 기차를 타는 것이 맞는가?”
“내가 타야 할 기차인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쉽게 올라타지 못하고 망설였다. 내가 탈 기차는 환승역에 도착하면 두 개로 연결된 열차가 분리되어 앞 열차는 부산으로 뒤 열차는 산천으로 간다고 했다.
그러니 기차 칸을 잘 못 타면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한다는 말에 당황스럽고 난감했다.
처음이 어려웠다. 이제는 두 번째라서 익숙함이 편리함으로 느껴졌다. 다만 더 나이가 들면 힘들 수도 있겠다는 걱정은 들었다.
기차여행이 당연 힘들고 놀랍고 당황스러웠던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너무 좋았고, 조용해지고 떨림이 적은 것도 정말 좋았다. 깨끗하고 조용한 것도 마음에 쏙 들었다. 한가한 독서를 하는 사람처럼 책을 꺼내 읽어보는 척도 해보고 커피를 마시며(사실 마스크 착용 때문에 정말 척만 했던 기억) 여유를 부려보기도 했다. 가는 내내 문자메시지가 울렸다.(남편은 카톡을 쓰지 않음) 마치 어린애가 길 떠나 멀리 타향으로 가는 것처럼 걱정이 태산 같았는지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남편 덕(?)에 안전하게 도착지에 도착했다.
"버스 잘 탔어?"
"기차 탔어?"
"오송?"
"곧 환승하겠네"
"동대구 지남?"
"기차 연착이래"
우와 정말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기가 막힐 정도로 시간 맞춰 잘도 보내왔다. 정말이지 덕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확하게 때맞춰서 보내왔다. 도착역에서 출입구를 나가자마자 저기 먼발치에 보이는 한 사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집 나와서 5시간 30분 만인가? 정말 반가웠다. 남편은 오래도록 시간을 들여 찾아와 준 내가 고마웠던지 미안해서였는지, 어깨를 토닥이며 "오느라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얼굴 보니 좋은 건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남편 차를 이용해서 꽃 축제가 한창인 상림공원으로 여행 삼아 돌아 돌아오느라 기차여행의 기분을 다시 누리지는 못했다. 그곳까지 가는 것이 좋았던지 "한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오는 것도 좋겠다"며 웃는다. 5시간 반을 다시 갈 생각에 쉽게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매주 오는 남편이 안쓰럽기는 한 걸 보니 다시 갈 것 같기는 하다.
정으로 사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우리는 이렇게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서 주말부부가 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잘 지내고 건강을 잘 챙기면서 세월에 흘러 보내다 보면 어느샌가 또 시간도 같이 흘러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화살촉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이니 아마도 긴 시간이 화살촉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 있으리라. "그때 그랬었지"라며 "우리 고생했네"라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어 보이겠지.
오늘은 문자로 감을 깎아서 잘라놓은 사진을 보내왔다. 사무실에 감이 들어왔는데 참으로 달고 맛있다며 택배로 보낸다는 말과 함께. 곧 단감을 먹을 수 있을 듯하다. 같이 도착할 지도.
달디 단 단감만큼이나 달큼한 저녁 맛있게 챙겨 드시고, 이번 주말도 열심히 힘내세요.
#기차여행 #주말부부 #단감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