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나에게 황금 같은 날이다.
특히 지난주처럼 외부 일이 많았던 한 주를 보낸 후의 토요일은 온전히 '내 것'이길 원했다.
당분간은 한가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토요일은 없을 듯했다.
조금이라도 토요일에 할 일을 덜기 위한 나의 선택은 금요일 퇴근길에 마트에서 주말 동안 먹거리와 남편에게 해서 보내줄 밑반찬 거리를 사는 것이었다.
집 앞에 있는 로컬푸드에서 먹거리 장을 보고 집에 도착해서 준비하다 보니 저녁식사가 늦어졌다.
로컬푸드에서 구입한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고 남편과 함께 저녁 산책을 나갔다. 내일 할 일은 내일 하기로 하고 나가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토요일은 여유 있게 지내고 일요일에 음식 준비를 해서 담아 놓으면 되니 이 정도 여유는 충분히 가능했다.
뻔하게도 당연한 듯 한 딸에게서 외출 제의가 왔다. 토요일 오전 카톡으로 문구점, 다 있는 곳, 마트, 택배를 부치기 위한 편의점까지 가야 할 곳이 다양했다.
편의점에 들러 택배를 부쳤다. 다음은 문구점으로 향했다. 필요한 것을 사고 다시 '다 있는 곳'으로 갔다. 1층에 들어서니 새로 나온 식물이 보였다. 그 앞에 서서 화분을 쳐다보다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화분 키우키 세트상품이 있었다. 그 앞에 서서 구경하는 나에게 딸이 말했다.
"식물 죽이지 마세요."
"..."
"이번에는 어떤 식물을 죽이시려고요."
"잘 키울 거야"
"지난번에도 엄마가 잘 키운다고 했는데 다 죽었어요."
"내가 죽인 게 아니고 죽은 거야"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니고 죽이는 거라며 한참 잔소리를 했다.
아마도 지난번에 일 때문인 것 같았다. 지난 3월에 다 있는 곳에서 딸아이는 토마토 키우기를, 나는 채소 키우기 세트를 구입했다. 이틀 사이에 두고 딸은 빨간색 동그란 화분에 토마토를 정성껏 심었고, 나는 채소 키우기를 초록색 네모난 직사각형 화분에 심었다. 물을 듬뿍 주고 씨앗을 뿌리고 흙을 살짝 덮어주었다. 설명서에 적혀있는 대로 때가 되면 물을 주었고 했빛이 드는 곳에 놓아두었다. 한참이 지나 빨간색 화분에서 새싹이 올라왔다. 이틀 늦게 심은 내 화분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한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마도 물을 너무 많이 주었다는 것이 딸아이의 생각이었다. 너무 많은 관심을 주었기에 적당히 물을 주고 햇볕도 쐬어주어야 하는데 너무 자주 물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화분을 키우는 것이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렸을 적 화단 가득히 꽃들이 만발했던 앞마당은 기억 속에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나에게는 엄마처럼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식물을 키우는 재주가 없었다. 그냥 두어도 살아난다는 산세베리아나 다육이도 키우다 보면 너무 말라서 죽거나 썩어서 넘어지고 말았다. 식물에 맞게 적당하게 물을 주고 너무 촉촉하게 하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너무 많이 주거나 너무 조금 주거나 둘 중 하나였다.
'적당히'는 식물을 키우는 것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삶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에서도 '적당히'는 필요했다. 모든 이가 그렇지는 안 하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열심히 하거나, 상대가 좋아서 무작정 앞으로 돌진하는 인간관계는 탈이 났다.
산세베리아 by 정연
시기가 지난 누군가에게서 받은 고구마가 검정 비닐봉지 안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물건을 정리하다 눈에 띈 검정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보니 고구마 3개가 들어있었다. 몇 개는 먹고 3개만 남았던 모양이었다. 고구마에서 조그마한 싹이 올라와 있었다. 관심 밖에 있던 고구마는 혼자서 싹을 틔워냈다. 일회용 커피 컵이 있어 거기에 물을 담아 고구마를 세워놓고 책꽂이 올려놓은 후 내 머릿속에서 다시 잊혔다.
어느 날 눈에 띈 고구마는 저렇게도 싹을 키워냈고, 며칠이 지난 후에는 줄기가 뻗어올라 책꽂이를 타고 가고 있었다. 고구마는 관심을 많이 주고 키울 때보다 오히려 관심 밖에서 자라는 지금이 훨씬 더 잘 자라고 있다.
때로는 무심한 듯한 것이 쉬운 것 같다가도 어렵다가도 했다. 사실은 그냥 어렵다.
적당히 관심을 갖는 것,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 적당히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제일 어려운 것이다.
적당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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