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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하 Aug 28. 2023

스스로 돌봄을 거부하는 자기 방임

자식들 고생 덜하게 그냥 이대로 죽을 거여...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그냥 이대로 죽으면 된다며 '내 병은 내가 알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죽어야 자식들이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그분을 생각이다. 병원에 가면 병원비며 약값이며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느라 자녀에게 신경 쓰게 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자식들에게는 아프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입에서 안 들어간다며 음식을 거부하는 듯한 증세가 있어도 자식들이 전화가 걸려오면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라고 일축해 버린다. 자식이 걱정하느라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할까 염려되서였다.


어르신들은 그냥 괜찮다는 말이 입에 붙어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난 괜찮아. 금방 나으니까 괜찮아. 밥 먹으면 괜찮아. 약 먹으면 금방 괜찮아져.


뭐가 그리 괜찮은지 모르겠는데 항상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상대방을 걱정한다.

"이렇게 더운데 다니느라 힘들 텐데 어쩐데."

"나 같은 사람한테 찾아오느라 더위에 고생이 많네 미안혀서..."


지난번에 어르신은 단백질영양식으로 마시는 음료가 몸에 잘 맞고 배가 든든해서 좋았다며 식사를 잘 못할 때 먹으니까 식사 대용으로 할 수 있어서 편하고 좋았다고 하시기에 그럼 자녀에게 얘기해서 다음에 올 때 사다 달래면 어떠냐고 물었다. 멋쩍은 듯 웃으며 자식들에게는 그런 말 하기 곤란하다는 표정이다.


"자식이래도 그런 말은 못 하겠대. 괜히 자식한테 뭐 해달라고 하면 부담스럽게 해서 피해 주는 것 같고, 혹시 머퉁이라도 하면 나도 상처받고 자존심도 상해서 안 해. 자식이라도 그렇더라고. 그냥 안 먹고 말지"


치매어르신이 치매어르신을 돌보고 있는 상황은 더욱 곤란한 상황이다. 배우자를 돌봐야 하고 자신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참 처참했다. 식탁 위에는 약봉지가 어지럽게 놓여 있고 언제 식사를 했는지 모르게 주방은 식사한 흔적이 없었다. 남편보다 아내의 치매정도가 중증일 경우는 좀 더 심각했다. 금방 식사를 하고도 잊어버리고 뒤돌아 서서 밥을 달라고 하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짜장면 사달라고 했는데 짜장면 안 사줘. 뭐라고 좀 해줘!"

"아까 밥 먹고 또 저런다니까. 내가 언제 안 사줬어"

"짜장면 좀 사주라고 말해줘. 짜장면 안 사줘."

"짜장면 사줘. 짜장면 사달라고!"


어르신을 찾아가서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지 마자 방에 누워있던 어머니는 어느새 옆으로 다가왔다. 다짜고짜 남편이 자장면을 안 사준다며 우리에게 고자질했다. '자장면 사주라고 해'라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두 어르신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느라 머릿속은 분주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좀 전에 밥을 먹었는데 잊어버려서 그렇다며, 금방 한 일을 잊어버리니 밥을 먹고도 또 달라고 한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얘기를 들으며 어머니의 배를 쳐다보니 볼록 튀어나와 는 것이 식사를 한 지 얼마 안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투덜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집에 오는 것이 불편한지 거부하는 게 안타깝다. 방문요양서비스도 이제는 소용없다고 했다.


"내가 하면 되지 뭘 오라고 해. 두 늙은이 사는 거 별거 있간디. 그냥 밥 좀 해서 먹으면 되지"


스스로 돌봄을 하겠다며 누군가의 도움을 청하지도 않으려 하고 있다. 자신을 돌보는 일이 예전과 다른데도 극구 예전과 같이 잘할 수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세는 나빠질 텐데 걱정이 앞선다.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한다.


내일도 여자 어르신은 폐지를 주우러 손수레를 끌고 뜨거운 태양아래 마을을 헤매고 다닐 것이다. 남자 어르신은 '때가 되면 들어오겠지'라며 TV를 보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의 '때'가 언제인지는 모른 채.


여름 하늘 아래 정처없는 도시의 갈대



#노인복지 #돌봄 #자기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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