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별하 Aug 31. 2023

차라리 밥 안 먹고 말지...

도무지 가르쳐 줘도 몰라.

어르신이 식당에서 그냥 나와야 하는 이유. 차라리 밥 안 먹고 말지...

도무지 가르쳐 줘도 몰라.     


주말에 대형 마트에서 식사 주문을 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앞에 있던 부부로 보이는 두 어르신은 기계를 이리저리 한참동안 살펴보고 있었다. 주문하는 방법을 찾느라 기계 화면을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뒤에서 보고 있으면 민망할까 봐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처럼 휴대폰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안 보는 척하고 있었으니 선뜻 도와드리겠다고 나서기도 그래서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자’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 좀 봐줘 봐요.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주겠소?”

“네. 이렇게 누르고 여기에 카드를 넣고 이걸 누르시면 돼요.”

“아, 그게 거기에 있었네, 여기에 카드를 넣으면 되는 건데 몰랐네요.”     


어르신은 ‘이제 알았어. 고마워요.’라고 말하고는 주문서를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셨다.      


대형 식당 입구에 있는 키오스크에 조금은 익숙해질 때 즈음 되니 이제는 식당 안 테이블마다 태블릿PC가 놓여 있었다. 주문서를 들고 와서 주문을 받는 직원은 없고 원하는 곳에 앉아 태블릿PC에서 주문을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봄에 있었던 일이었다. 치매를 진단받고 치매약을 복용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안부와 식사, 약복용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전날 방문했던 어르신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화기를 바꿨는데 새로 가입한 휴대전화를 사용할 줄 모른다며 알려달라고 했다. 어르신 댁에 방문하니 ‘나는 필요 없다는데 아들이 새로 해준 거야’라며 새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스마트폰이었다. 손자들이 동영상을 보냈다는데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고 어떻게 보는 거냐고 물었다. 메시지로 보내온 동영상을 찾아서 저장하고 영상의 시작 버튼을 눌러 어르신에게 휴대폰을 보여줬다. 처음부터 자세하게 동영상 시청하는 방법을 보여드렸다. 어르신이 직접 눌러보고 작동하기까지 몇 번을 반복해서 설명했다. 영상을 시청하면서 연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손자 맞아, 이게 우리 손자야.”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채 한참을 보고 또 보고, 동영상을 계속 돌려보더니 다시 휴대전화를 건넸다. 스마트폰 작동법이 낯설고 어렵다며 다른 것도 알려달라고 했다.      


“이거 전화번호가 자꾸 없어져서 전화기가 이상해졌어. 전화번호 좀 찾아줘 봐.”     


어르신은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았는데 번호가 자꾸 지워진다며 자녀들에게 전화를 걸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화번호 단축 버튼이 전에 사용하던 폴더폰과 다르니 번호를 눌러서 전화를 걸어야 하지만 그대로 번호를 삭제하거나 뒤로 가게 해서 전화 걸기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궁금했던 것을 알려드리고 헤어졌다.    

 

다음날 어르신이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어르신은 전화를 걸어 내 목소리를 확인하더니 매장 직원을 바꿔줬다. 직원은 전화를 건네받고 내게 물었다.     


“어르신이 전화기가 안 된다고 매장에 오셨는데 어제 다녀간 사람이 전화기를 손대서 그렇다고 물어보라고 해서요. 혹시 다른 기능 손댄 것 있어요?”

“아뇨, 어제 동영상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드린 것 밖에 손댄 것은 없어요.”

“아, 네. 그럼 어르신이 잘못 눌러서 번호가 또 없어졌나 봐요. 하루에도 한두 번씩 전화기가 고장 났다고 고쳐달라고 오시거든요.”     


직원은 어르신이 전화를 바꾼 이후 전화기 고장 나서 작동이 안 된다며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매장에 와서 전화기를 고쳐달라고 한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삭제해서 번호가 없어지기도 하고 다운로드 했던 앱을 삭제해서 실행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매일 비슷한 이유로 자주 오신다고 말했다. “매번 알려드렸는데도 똑같은 일로 오세요. 너무 자주 오셔서.. 어떤 때는 손님이 있는데도 막무가내로 알려달라고 해서 곤란할 때도 있었어요.” 직원은 덧붙여 말했다.      


어르신에게 안부를 묻고 식사는 잘 하셨는지, 끼니는 거르지 않는지, 약은 잘 챙겨서 복용하고 있는지를 여쭤보니 몇몇 어르신이 한숨 섞인 대답을 했다. 밥 먹으러 친구들과 식당에 가면 사람을 볼 수가 없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이제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우리는 어디 가서 밥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떤 식당에 가야 사람이 주문을 받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기계로는 주문을 못하거든. 아무리 알려줘도 도통 모르겠어. 그냥 나와서 다른 식당을 찾아가고 말아.”

“가게에 들어갔는데 사람은 없고 기계만 있잖어. 그럼 차라리 그냥 나오고 말지. 안 먹으면 그만이야. 도무지 가르쳐 줘도 몰라. 알 수가 있어야지.”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어서 죽어야 해. 이렇게 오래 살 것이 아닌데. 왜 죽지도 못하고 목숨 부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밤이 되면 잠에서 깨서 창밖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빨리 죽어야 애들한테 피해를 안 줄 텐데. 이렇게 살아서 뭐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푸념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을 쏟아내셨다. 요즘은 가게에 들어서면 출입문 앞에 키오스크가 있는 곳이 많아졌다. 처음 키오스크를 접했을 때 주문을 할 줄을 몰랐었다. 기다렸다가 순서를 양보하고 다른 사람이 주문할 때 어깨너머로 쳐다보고 따라 했던 기억이 났다.     


언젠가부터 가게에 들어가면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익숙하던 아이스크림 매장에 들어갔을 때 문 앞에 놓인 기계를 보고 당황했던 기억, 음료를 사러 들어갔던 매장 키오스크 메뉴와 선택 버튼에 놀라 어물쩡거리니 “이쪽으로 오시면 도와드릴게요.”라고 하던 직원의 목소리가 어찌나 반갑던지. 여행 중 들렸던 섬진강 옆 작은 식당에서 종업원을 찾았는데 뒤에 따라 들어온 손님이 내 옆에 있던 초등학생 키만 한 기계의 버튼을 누르며 주문서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가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따라 했던 일이 생각났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다 보면 휴대전화로 대기번호 순서 알림이 울리는 일을 익숙하게 할 수 있을까. 매일 새롭게 변화하는 문명 앞에 두려움이 들 때가 있다. 세상이 앞서서 변하고, 우리는 노화라는 퇴행을 맞이하고 있는데.


https://omn.kr/25e7e


#노인 #키오스크 #노화


                    

매거진의 이전글 스스로 돌봄을 거부하는 자기 방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