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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하 Jun 28. 2023

버렸는데 또 수북이... 약에 집착하는 노인

치매 아내와 장애인 아들을 돌보는 치매 환자 어르신을 보며

어르신의 거실에 놓여 있는 상자. 그 안에 가득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2개월 전 분명히 그 안에 들어있던 약을 정리했거든요.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저는 가정 방문 당시 유통기한이 지난 약봉지와 무슨 약인지 모르게 낱개로 굴러다니는 약을 모아 어르신의 동의를 받은 후 한 곳에 모아서 약국에 갖다주었습니다.
 
사실 어르신 댁을 방문할 때마다 TV 앞에 놓여 있던 상자 안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그 안에서 약을 찾고 있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약국 이름이 적힌 것과 아무런 이름도 적혀 있지 않은 비닐봉지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상자에 담겨 있는 약은 개봉도 하지 않았지만 유통기한은 한참이나 지나 있었습니다. 약 상자 겉면에 '2017년 3월 00일'이라고 선명하게 유통기한이 적혀 있었거든요. 약통에 담겨있던 것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똑같은 이름의 약병이 몇 개씩이나 있었고, 이것 또한 열어보지도 않았지만, 유통기한은 지나 있었습니다. 약국에서 조제해 준 약 역시 뜯지도 않은 것처럼 봉지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었습니다.
 
어르신은 건강이 염려되고 스스로 아내를 돌봐야 된다는 생각에 당신의 몸과 아내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픈 아내와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주는 약을 모두 모아서 집에 가져왔습니다.

그리곤 약을 먹는 것을 잊어버려 먹지 않고 쌓아두는 양이 점점 늘어난 겁니다. 자신의 약과 아내의 약, 아들의 약까지도. 한 달 혹은 3개월에 한 번 다녀오는 병원에서 또다시 약을 타오면 박스에 담아 놓습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안도합니다. 이제 건강해질 거라고. 아프지 않을 거라고.
                                     

▲ 비닐봉지에 넣은 약봉지 병원 이곳 저곳에서 처방받고 가져온 약을 그대로 비닐봉지에 넣은 채 거실 종이상자에 쌓여있는 약봉지들. 유통기한이 지난 것도 그대로 남아 있다.


상자 안 약을 하나씩 살펴보고 똑같은 이름의 약끼리 모아 구입 시기와 제조 일자를 살펴보았습니다. 2017년부터 2023년 가장 최근 것까지 모두 뒤죽박죽 섞여 있었습니다. 한 봉지를 정리하고 또 다른 한 봉지를 꺼낼 때 어르신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약봉지를 꺼내 너무 오래된 약은 모두 뜯어서 한곳에 담았습니다. 노란색, 분홍색, 하늘색, 하얀색, 동그란 것, 길다란 것, 반절 잘린 것, 줄무늬가 있는 것 등 색깔도 모양도 다양합니다. 약이 한 알 두 알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어르신의 눈동자가 심하게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자에서 또 다른 약봉지를 꺼내려니 만류하는 손길로 손사래를 치려고 합니다. 너무도 불안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십니다.


"어르신, 이 약 날짜 보이시죠. 여기 적혀 있는 것 보시면 날짜가 2019년도라고 적혀있어요. 이거는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오래됐다고? 그런 건 버려도 돼요."

"네, 그럼 여기에 다 버릴게요."


겨우 허락과 동의를 구해서 유통기한 지난 약은 분리해서 한 곳에 담아놓았습니다(다시 복용하지 못하게). 마지막까지 양보하지 않은 한 봉지의 약은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어렵게 구한 약이라고 했습니다. 차마 그 약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약해진 마음 때문인지, 어르신이 너무 놀라서 당황해하며 불안한 눈동자로 약을 쳐다보며 계속해서 손을 만지작거리는 모습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지난주에 방문한 어르신 댁에 들어서며 TV 앞을 먼저 살폈습니다. 2개월 전에 약이 들어있던 상자를 쳐다봤습니다. 2개월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상자가 여유로워 보여야 맞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약봉지가 한 가득이었습니다. 어르신은 병원에서 가져온 약을 그대로 담아놓았습니다. 약을 챙겨서 시간 맞춰 복용했다면 이렇게 가득히 쌓여있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장애가 있는 아들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보니 약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배우자(아내)의 약을 챙겨줘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깜빡 잊어버렸습니다. 약을 챙겨 먹을 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치매약을 복용 중인 어르신은 마음속 가득하게 자리 잡은 아들의 일에 온 신경이 사로잡혀 있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10여 년 전에 치매환자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며 기억력 저하를 예방하기 위해 노래교실, 인지기능강화교실, 라인댄스 등 주민센터, 치매안심센터, 평생학습센터 등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보다 4년 더 일찍 치매환자가 된 아내를 돌보는 일도 14년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내 책임이니 끝까지 내가 돌봐야 하지 않겠어요. 젊어서 고생 많이 시켰으니까. 이제는 내가 돌봐야지요. 어떻게 병원에 보내겠어요."


치매환자인 어르신이 중증치매환자인 아내를 돌보고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까지 돌보고 있었습니다. '치매환자 맞춤형사례관리자'라는 일로 어르신을 만나게 된 지 1년이 넘어갑니다. 종결을 해야 하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도와드리거나 해결하도록 제안을 하기에도 그저 막막합니다.


답답한 마음만 가득하고 부족함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일은 현장에 나가보면 종종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연을 듣게 될까 가끔은 두렵기도 합니다. 너무도 많은 안타까운 소식을 듣기만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섭니다.


뒤돌아 나오며 몇 번이고 당부를 합니다. 약은 꼭 챙겨서 시간 지켜 복용하도록, 유통기한 지난 약은 버릴 것을 마지막까지 약속합니다. 어르신은 알았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손짓합니다. 내가 아프면 큰일 난다며 자신을 돌보야 아내와 아들을 돌볼 수 있다며 약을 챙겨서 잘 먹여야 한다고, 나 아니면 돌볼 사람이 없다고 그래서 약을 꼭 챙겨 먹어야 한다고.


다음 주에도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며 달력을 쳐다봅니다. 다음에는 한가득 들어 있는 상자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https://omn.kr/24ekk


#치매노인부부#노인복지#사례관리#치매환자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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