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만에 달려온 이유

츤데레 역시 츤데레

by 정아

금요일 오후. 여느 금요일처럼 남편에게 전화해서 물어본다. 여전히 먼저 알려주는 일이 없다.


"오늘 몇 시 도착해요?"

"오늘은 조금 일찍 출발해. 지금 출발했어. 차 가져가"

"그래요, 조심히 와요."


매주 금요일이면 집으로 남편의 교통편에 따라 데리러 가야 할 지, 데리러 가면 어디로 몇 시까지 가야 할지, 저녁은 몇 시에 먹을지 확인했다. 먼저 알려줄 때는 가뭄에 콩 나듯이 했다.


전화기 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차 안이었다. 4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출발했다. 얼추 계산하니 7시 반 정도 조착. 저녁은 남편 도착하면 같이 먹으면 되겠다 싶었다. 딸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아빠 벌써 출발하셨어. 저녁은 좀 늦게 아빠랑 같이 먹자.'

'그래그래'


이모티콘 답장이 도착했다. 퇴근시간 급하게 대형마트로 향했다. 오랜만에 모이는 세 식구 상차림에 신경이 써졌다. 마트 도착 전 신호대기 중 남편에게 어디쯤 오고 있는지 확인차 전화했다.


"지금 집에 거의 다 왔어"

"난 지금 마트 장 보러 가는 중인데, 같이 갈까요?"

"그래 그럼."

"근데 일찍 도착했네요?"

"좀 일찍 출발해서 휴게소 안 들리고 바로 와서 그래."


남편을 태우러 가기 위해 방향을 바꿔 집으로 향했다. 도착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그럼 4시에 출발한 게 아니고 더 일찍 출발했던 것.


전개의 발단은 이랬다. 목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정신없이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걸 실감했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자마자 누군가 찾아와서 질문을 했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두 눈을 고정시킨 채 질문에 답변이 끝나고 상대방이 뒤돌아서자 바로 앞자리에 있던 사람이 또 질문했다.


"샘, 오늘 출장지 어디로 올릴까요?"

"오늘은 나포에 다녀오기로 했어."


손으로는 자판을 두드리며 사이트에 로그인을 해야 하니 입으로만 대답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직 9시도 안 됐는데 오늘 왜 이러지?'


하루가 아주 다채롭게 고단함이 예상됐다. 이런 날은 이유 없이 그냥 바빴다. 9시가 되기도 전에, 자리에 앉기도 전에, 컴퓨터가 켜지기도 전에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니나 다를까 전화벨이 계속 울리고 문의전화가 내용마저 길었다. 평소 간단히 끝났던 문의전화도 이날은 이것저것 복잡한 사연이 많았다.


평소와 다르다. 역시.

볼 일이 있어야 연락하던 딸아이는 유난히 바쁘게 연락이 왔다. 집을 떠나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궁금한 것도 많고 스스로 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카톡이 울어댔다. 사진이 첨부된 채.


"이거는 분리수거 플라스틱?"

"음식물 묻은 봉지는?"

"밥은 냉동실에 바로 넣을까"

"냉동실에 넣으면 먹을 때는 어떻게 해"

"토퍼 그냥 살 걸 그랬나?"

"다용도 선반은 어떤 게 괜찮아?"

"카레는 냉장고에 넣어?"

....


계속해서 질문공격이 이어지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이렇게 메시지가 왔다.


"나 집에 가져올 거 있어서 가야 될 것 같은데, 언제 갈까?"


집에 오겠다는 거였다. 이사 간 지 4일 만에. 그러라고 하고 '도착할 때 시간되면 역으로 데리러 가마'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아빠에게 메시지 남기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내 곧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남편은 딸아이가 이사하기 이주일 전부터 말이 없었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나 지금 기분 알 좋음'이라고 이마에 대문짝만 하게 써붙여 놓은 것 마냥 심통이었다. 그런 아빠에게 먼저 집에 온다고 알려주라고 했다. 모르겠다는 답장이 왔다.


그러다 잊고 있었다. 금요일 오전에서야 남편에게 전화했다. 딸아이가 집에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담담하게 '문자메시지를 받았어'라고 했다. 모르겠다던 딸이 아빠에게 연락했던 것이다. 언제 출발해서 도착은 몇 시인지 확인까지 해야 했다. 남편은 딸아이보다 1년 먼저 직장일로 타지에 나가 있다. 집에 오려면 운전해서 3시간 반은 족히 걸렸다. 그건 휴게소를 안 들린다는 전제 하에 가능하다. 휴게소를 들리면 30분 추가됐다. 그렇게 걸리는 거리를 거의 3시간 만에 달려왔다.


말은 투박하고 말수가 적은데 이런 걸 보면 역시 츤데레. 딱 츤데레다.



시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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