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딸아이가 네 살이었을까? 조용히 말이 없이 다리를 보면서 놀고 있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아이를 한 번씩 쳐다보면 조용히 꼼지락거리면서 놀고 있었다. 아이가 조용하면 뭔가 이상하다는 말은 내 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딸, 뭐해?”
“엄마 너무 재밌어, 신기해요”
“뭔데”
“이거 구멍이 참 신기해요”
뭘 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서 다가가며 물었다. 가까이 가보니 무릎이 헤져서 구멍이 난 곳으로 손가락을 넣어서 이 쪽 저 쪽 다리를 만져보고 있었다. 구멍으로 보이는 자기의 속살이 너무 신기하다며 계속 손가락을 구멍에 넣어 옆에 있는 또 다른 작은 구멍으로 손가락을 빼냈다. 결국 하늘색 내복 바지에는 구멍이 두 개나 크게 뻥 뚫렸다. 몇 번 그 바지를 입을 때마다 손가락으로 어찌나 후볐던지 결국 바지는 구멍이 대문짝만 하게 나서 버리게 됐다.
딸아이는 한 살 터울로 사촌오빠가 있어서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가지 물품들을 물려받았다. 출산준비부터 동화책, 옷가지들을 모두 물려받아서 사줄 것이 별로 없었다. 시어머니는 첫 손녀에게 물려받은 옷가지들을 입히는 것이 탐탁해하지 않았지만 엄마인 내가 그렇게 한다 하니 말리시지 못했다. 여섯 살 때 유치원에 다니기 전까지 물려받은 것으로 입고 놀고 읽으면서 지냈다.
유치원에 들어간 딸아이는 옷 색깔에 대해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한 번도 때를 써본 적이 없었던 아이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을 때 2층에 있던 옷가게 앞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불러도 오지 않아서 뒤돌아 가보니 분홍색 원피스가 걸려있는 옷걸이 앞에서 원피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딸아이의 분홍색 사랑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티셔츠, 바지, 치마, 점퍼, 코트 등등 모든 것이 분홍색으로 선택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2년 동안은 분홍색만 고집했었다.
중학교 때였던 걸로 기억이 났다. 하루는 친구가 입고 온 자신의 바지를 가리키며 환한 미소로 보조개를 살짝 보이며 말했다.
“이 바지 너무 예쁘지 않아? 특이하지?”
“어디 봐봐”
“이거 봐, 엄마가 만들어주셨어 정말 예쁘지?”
친구가 말 한 바지는 무릎에 다른 것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내서 덧댄 바지였다. 가까이 가 보니 바지 무릎에 댄 동그란 모양은 뜨개질을 해서 실을 동그란 문양으로 떠서 무릎에 대고 꿰맨 것이었다. 친구는 연신 너무 예쁘다며 엄마가 어떻게 이런 걸 만들어 주셨는지 모르겠다며 좋아했다.
어렸을 적 엄마는 우리 바지에도 그런 모양으로 꿰매 주셨던 기억이 났다. 위에 언니 오빠가 많은 우리 집은 옷을 물려 입었다. 나에게 올 때는 이미 많이 헤져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엄마는 ‘예쁘게 만들어 줄게’ 라며 헤져서 무릎이 삐죽 베어 나오는 바지를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셨다.
재봉틀을 잘하시고, 뜨개질을 잘하셨던 엄마는 뚝딱뚝딱 예쁘게 천을 덧대서 헤진 곳을 보이지 않게 해 주셨다. 그래도 그 옷이 너무 싫었다. 오빠가 입었던 옷을 내가 다시 물려 입으면 동네 애들은 다 알 테니까 너무 싫었다. 그런 나를 엄마는 다음 장에 가서 네 옷을 사다 준다는 약속을 하고는 달래서 기어코 입게 만들었다.
지금도 딸아이는 그다지 옷에 욕심이 없다. 필요할 때 그때에 한꺼번에 사고는 거의 사는 일이 없다. 아빠가 옷을 사준다고 쇼핑몰을 데리고 가도 살 게 없다며 맛있는 저녁 사달라고 해서 밥을 먹고 서점에서 책만 사 가지고 집에 돌아올 때가 많다. 옷가게에 가는 것보다는 게임 아이템을 파는 전자제품 코너나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딸아이는 지금도 서점에 가자면 벌떡 일어나 언제 갈 거냐고 물어보곤 한다. 며칠 내로 딸아이랑 전주 중고서점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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