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와 눈깔사탕
외할아버지 댁에 다시는 가지 않을래요.
오늘은 엄마가 화장대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화장을 하는 분주한 손길과 함께 엄마의 분홍색 화장품 바구니도 바빠졌다. 한참을 지나 화장을 마친 엄마는 이 옷 저 옷을 꺼내서 살펴본 후 어떤 옷을 입을지 정해졌는지 옷을 갈아있었다. 엄마는 나에게도 예쁘고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힌 후 양산을 챙겨 들고 마루에 앉아 제일 예쁜 신발을 꺼내 신으셨다.
한 손에는 하늘하늘한 양산을 들고 다른 한 손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양산을 쓴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엄마는 화장한 예쁜 얼굴로 미소까지 띠며 나에게 물었다.
“엄마 어때?”
“너무 예뻐! 천사 같아요.”
엄마는 내 대답에 어딘가로 날아갈 것처럼 좋아하셨다. 하얀 피부에 동글동글한 얼굴과 160cm가 훌쩍 넘는 엄마는 우리 동네에서 꽤나 미인 축에 들었다. 화장까지 곱게 단장하고 하늘하늘 예쁜 옷을 입은 그날의 엄마는 너무나도 예뻤다.
엄마는 결혼하자마자 9남매의 맏며느리로 집안 식구가 장장 30명 가까이 되는 살림을 해야만 했다. 옆집에 사는 작은할아버지네 가족, 우리 남매와 같은 동네에 사는 작은아버지와 가족들, 집안일과 농사일을 하는 일꾼들이 가장 많을 때는 28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엄마가 집을 비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갈아타고 한 시간여를 가면 외가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신작로를 걸어 마을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계신 외가였다. 외가는 마을 안쪽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머리가 완전히 백색이었다. 눈이 커서 부리부리하고 시원시원하게 생긴 데다 목소리도 우렁찼다. 그때는 외할아버지의 특이한 성향을 정말 까맣게 몰랐다.
가게 안에는 동네 사람들이 서너 명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 또래의 남자아이도 있었다. 나는 가게에 들어서면서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오냐, 우리 손녀 왔냐”
“철수야, 이리 와봐”
“너도 이리 와봐”
외할아버지는 내 인사를 받자마자 갑자기 나와 가게에 있던 내 또래의 남자아이를 불렀다.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외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갔다. 외할아버지는 그 아이와 나에게 눈깔사탕을 보여주더니 박치기를 제안했다. 외할아버지의 손바닥 위에는 어느새 눈깔사탕이 올라와 있었다.
“박치기하면 눈깔사탕 줄게, 어디 한 번 해볼래?”
“또 시작이시네, 손녀딸 다칠라, 하지 마세요”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에게 하지 말라고 말렸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가 말렸어도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나는 엄마와 외할머니를 쳐다보며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나는 도와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엄마를 쳐다봤지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날 생전 처음 본 남자아이와 박치기를 해야만 했다.
“아야! 엄마!”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눈에서는 왕방울만 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동네 사람들은 ‘아프냐?’며 물었지만 웃음소리는 숨기 지를 못했다. 나는 웃고 있는 사람들이 얄미워서 더 크게 울어댔다.
“외할아버지 댁에 다시는 오지 않을 거예요!”
나에게는 지금도 외할아버지의 잘생기고 시원시원한 얼굴보다 눈물 콧물 범벅으로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픈 박치기와 왕방울만 한 눈깔사탕으로 기억된다.
지금 외가가 있었던 동네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할머니는 큰아들이 있는 시내로 거처를 옮기셨고, 살던 집과 산과 논은 모두 팔아버려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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