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넘쳐나는 스쿨버스

by 정아

고등학교 재학시절 3년 동안 2년간은 스쿨버스를 이용했다. 처음 스쿨버스에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다 남녀가 같이 타고 다녀서인지 분위기가 삭막했다. 남녀공학 학교는 아니었지만 같은 사립학교 재단에 있는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모두 이용하였기에 남녀가 섞여있었다.

초기의 서먹함은 잠시 뿐이었다.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서로 친해지고 이름을 알게 되면서 스쿨버스 안의 정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자리를 맡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고 남학생들과 부딪히지 않으려는 여학생들의 노력이 가상했다. 자연스럽게 여학생은 앞쪽으로 앉고 남학생은 뒤쪽으로 앉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스쿨버스 안에서의 짝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갑자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와! 킹카다 킹카”

“쟤가 걔야? 그 블랙진주라는?”


“퀸카다, 퀸카가 탄다!”



“그래 쟤랑 걔랑 사귄대"

"정말? 언제부터?"


스쿨버스의 킹카와 퀸카가 생겼다. 까만 피부에 잘생긴 외모로 남고에 다니는 킹카는 ‘블랙진주’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여고에 다니는 우리 친구는 무용을 해서인지 ‘여신’이라 불렸다. 그렇게 둘은 의도치 않게 사귀는 연인사이로 소문이 돌았고 둘 중 누구라도 버스에 타는 날은 웅성거리는 소리가 엄청났다.

그 둘이 아니었어도 자연스럽게 ‘썸’은 생겨났고, 남녀가 모이니 소문도 정말 무성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소문은 소문에 그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에는 버스 안에 쵸콜릿이 넘쳐났다. 누가 누구에게 준 건지는 모르지만 서로 나눠먹기도 했다. 기사아저씨에게 서로가 약속한 것처럼 쵸콜릿과 사탕을 주고,

아저씨도 우리에게 항상 쵸콜릿과 사탕을 주셨다.


남자고등학교와 여자고등학교가 스쿨버스가 다니는 큰 통로를 사이에 두고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던 터라 화이트데이는 그냥 넘어가는 적이 거의 없었다.

어느 날 교식 밖 복도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친구와 나는 얼른 뛰어나가 친구들 틈 사이로 창밖을 바라봤다. 흰 체육복을 입은 남학생이 바구니를 들고 여고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일제히 소리쳤다.

“우와!”

박수소리와 함께 엄청난 함성을 받고 남학생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교실을 찾아들어가 바구니를 전했다. 우리는 일제히 남학생이 지나가는 길을 만들어 주었고, 그 교실 앞으로 몰려들었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치면 안 될 것처럼 달려들었다.

남학생은 바구니를 무사히 여학생에게 전달하고 꽁지가 빠지도록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고로 달려갔다. 우리는 그 용감한 남학생에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보내줬다,

잔잔하게 일어나는 이야기 거리들은 힘든 학교생활과 입시준비로 지쳐있는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가장 먼저 딸의 혼사를 치룬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친구야! 미안해, 너 할머니 만들었어”라며 손녀가 태어난 걸 알려왔다.

다 같이 기뻐하며 축하해 주고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한 번도 같은 반은 되지 않았지만 사랑이 넘쳐나는 스쿨버스에서 시작된 우리의 우정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둘도 없는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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