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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하 Aug 30. 2023

냄비밥에 누룽지까지

밥하기는 어려워

냄비밥에 누룽지까지

"누룽지 만들려면 어떻게 해?"

"누룽지는 왜? 사준 거 있을 텐데."

"밥을 했는데 누룽지 눌려서 먹고 싶어서 만들어보려고."

"밥을 다 퍼내면 밥이 눌러 있는 냄비를 약한 불로 10분 정도 있다 불을 끄고 식으면 눌어붙었던 밥이 누룽지가 돼서 저절로 떨어질 거야."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얼추 되었겠다 싶었을 때 메시지가 왔다. 누룽지 만들기에 성공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생애 첫 누룽지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저녁에는 누룽지를 끓여 먹겠다고 했다. 냄비에 밥을 하는 것도 신통방통한데 냄비에 누룽지를 만들어 끓여 먹겠다니 듣던 중 신기한 말이었다.     


인생 처음 독립해서 혼자 살게 된 딸아이는 전기압력밥솥을 사준다 해도 필요 없다고 사양했다. 밥을 해서 먹을 거라며 큰소리를 치더니 자신이 없어서인지 싶었다. 전기압력밥솥 말고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냄비를 사달라고 했다. 한 번도 했던 적이 없으니 당연 전기압력밥솥을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직접 표현했을 때가 4년 전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던 것으로 기억했다. 학교에 가면 숨을 쉴 수 없이 힘들다며 자취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힘드니까 그냥 하는 말로만 받아들였다. 입시에 힘들고 무한경쟁에 힘들어했다. 친한 친구가 경쟁상대로 성적 0.1점을 올리기 위해 이겨야 했고, 초등학교부터 친한 친구는 이제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격려해 주는 시간보다 머리를 책상에 닿을 듯이 책을 들여다보느라 바쁘기만 했다. 경쟁자들로 가득한 교실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친구들 누구나가 잘 이겨내고 있으니 너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 주말이면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실에서 중환자실로 병실을 옮겼을 때는 면회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더 이상 할아버지를 못 만나니 아쉬워했었다. 병세가 호전되고 일반 병실에서 할아버지를 만나고 힘을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의 입원으로 병원을 오고 가기를 50여 일. 학교에서 할아버지의 비보 소식을 듣게 되었고, 저녁시간이 되자마자 병원 중환자실로 달려갈 때만 해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이 숙연해 보였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준비해 간 하얀 티셔츠를 입으면서도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30분을 달려 병원에 가까워지니 너의 오열은 시작됐고 멈추지를 못했다. 중환자실 앞에 도착했을 때 마지막이라며 얼굴 한 번 보려는 너를 병원에서는 폐렴이 옮길 수 있다고 만류했다. 결국 그렇게 할아버지를 떠나보냈다. 너무도 슬픈 봄이었다.  

   

담담한 듯 씩씩하게 잘 버티던 네가 혼란스러워한 건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늦여름이었을까.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차피 선택이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심을 안 먹는 건 하루 이틀은 반찬이 입에 안 맞는 게 나왔다고 생각했다. 학교 앞에서 만난 네 친구가 점심시간에 식당에 오지 않는다는 말을 해 주었을 때 물었다.      


“언제부터 점심을 안 먹었어?”

“몰라. 기억 안 나.”

“배고프지 않아?”

“괜찮아.”

“점심 먹어야지.”

“식당에 가면 숨을 쉴 수가 없어. 애들이 말 거는데 할 말이 없어. 나는 기분이 안 좋은데 좋은 척하며 웃어주는 것도 이제 힘들어.”

“....”     


학교에서 밥을 밥 먹듯이 굶던 아이가 냄비에 밥을 해서 누룽지를 눌려서 끓여 먹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상당하다.     


너의 첫 누룽지를 기념하며

힘을 내어줘서 고맙다.


아침에 핀 나팔꽃



#독립 #방황 #딸 #누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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