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길가에 수북이 쌓이는 나뭇잎이 곳곳에서 보인다. 가을비카 촉촉이 내리는 한낮에 거리는 한산했다. 우산을 쓰기에도, 안 쓰기에도 애매하게 가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 결국 한 발을 내디뎠다. 산책을 가는 길에 한두 번은 우산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약간의 흐릿함이 딱 적당하게 운치 있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나가는 일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운동을 시작한 후에는 퇴근 후 2시간 이상 운동을 한다는 이유를 대며 스스로에게 '점심시간은 휴식이 최고지!'라고 속으로 큰소리쳤다. 이런 내가 산책을 그만 둔지 1년이 넘은 지금 움직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부터 딸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시작한 무슨무슨 게임이 있다. 게임 안에서 매일 산책을 하고, 길을 걸으며 꽃을 심는 그런 과제를 내어주었다. 게으른 나에게 점심시간에 산책이라는 명목하에 움직이게끔 해주었다. 이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게임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얼마쯤 걸어갔을 때 텅 빈 거리 저만치에 긴 의자가 있었다. 운치에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뚜벅뚜벅
살랑살랑
나에게서 나는 신발소리와 스쳐 지나가는 나무가 흔들리며 내는 소리와 내리는 빗소리까지 어우러진 소리까지 좋았다.
얼마쯤 걸어가는 곳 저 앞에 보이는 긴 의자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노란 나뭇잎
잠시 한숨 쉬어가는 것일까.
이렇게 서둘러 내려온 자신을 잠시 돌아보는 것일까.
"한 해 동안 행인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기분 좋은 푸른색을 만들어 주었고, 잘 지내다가 내 한 몸 떨구어 지구로 다시 돌아가노라."라며. 뭐 이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