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별하 Jun 26. 2021

연명치료 거부하고 카드 발급받았습니다.

죽음을 결정하는 자기결정권으로 자신의 삶을 종결할 수 있어요.

여름이 성큼 코앞으로 다가와서인지 저녁 일몰시간은 늦어져서 밤 8시까지 환하게 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아버지의 다섯 번째 기일을 맞아서 조기 퇴근을 하고 서둘러 시댁으로 향했다. 늦지 않게 제사를 지내고 정리를 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졌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제사를 지냈다. 제사상을 물리고 설거지며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시어머니는 가방에서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계셨다.

 

시어머니는 혼잣말로 ‘그게 어디 갔더라. 그거 신청했더니 카드가 나왔다’며 가방을 이리저리 찾더니 무언가를 꺼내서 보여주셨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이라고 적혀있는 카드와 신분증을 꺼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카드와 신분증에 적힌 글씨를 자세히 읽어보았다.


“나는 아프면 병원에서 호스 같은 거 끼지 말고 그냥 그대로 가게 해라.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누워서 코에 호스 끼고 주사약 몇 개씩 주렁주렁 달고 있는데 나는 그거 싫다.”

“왜요, 그런 말씀 마세요. 자식 된 도리로 최대한 해볼 수 있는 거는 다 해 봐야죠. 그냥 돌아가시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평생에 한이 돼서 아범 어떻게 살라고요.”

“사람이 몸이 아파서 쓰러지면 갈 때 그냥 가야 되는데 억지로 살려놓는 것도 나는 별로더라.

사람이 갈 때 되면 그냥 가야지 약으로 억지로 살려놓고 숨만 쉬게 하는 거 그건 니들 욕심이지 누워있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거다 “


요즘은 병원에서 약이랑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쓰러져도 건강을 찾아서 한참을 더 사실 수 있는데 어떻게 포기를 하냐고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니다. 나는 이거 쓰고 왔으니까 나 쓰러지면 그냥 내버려 둬라. 나는 그냥 그만큼만 살다 갈란다. 그렇게 산들 뭐가 좋겠냐. 나는 그렇게 누워서 자식도 못 알아보고 말도 못 하고 겨우 숨만 쉬면서 더 살기는 싫다. 카드 있으니까 병원에서 알아서 할 거다. 그리고 니들 고생해서 안 된다. 마지막에 짐은 되지 말아야지.”


5년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지는 2개월간 중환자실에서 누워계시다가 결국 생명 연장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날이 왔다. 의사는 아들을 불러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라고 했다.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와 아버지를 바라보는 큰아들의 입장은 현저히 달랐다. 산소호흡기 부착에 대해 거부하는 시어머니와 찬성하는 큰아들은 생각 차이로 그때부터 사소한 말다툼이 시작됐다.


그냥 보내지 이게 뭐냐, 이도 다 빠지고 사람도 몰라보는데 이게 뭐냐”

“이렇게 있다가 깨어나실 거예요, 조금만 참고 기다려보세요”

“사람이 갈 때 되면 가야지 억지로 살린다고 될 일이냐”


아들의 의견대로 돼서 시아버지는 남은 날들을 산소호흡기와 약물에 의존해서 살아계시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돌아가셨다. 큰아들 생각에 동의했던 나는 남편이고 아들의 아버지인데 그렇게 쉽게 생명을 포기하려고 한다는 의심에 시어머니에게 배신감마저 들었었다. 장례를 마치고 시어머니를 잘 보지 못했었다.


 시어머니는 카드와 신분증을 다시 잘 넣으면서 “연명치료 거부의사를 밝혔고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했다”며 주민등록증 아래에 적힌 장기기증 하트 표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을 보여주며 아프면 이거 병원에 보여주라고 꼭 가방에 넣고 다니셨다고 했다.

응급실 모습


그때 시아버지처럼 누워서 내 사랑하는 아들과 손녀도 못 알아보고 눈도 뜨지 못한 채 병원에 누워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고 그냥 죽게 해달라고 하셨다. 나 죽으면 묻지 말고 태워달라는 말씀도 잊지 않고 남기셨다. 아픈 곳이 생기다 보니 남아있는 것과 갖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주려고만 하고, 이제는 마지막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 생각을 꼭 지켜 달라”라고 하는 말씀은 마지막 유언처럼 들렸다.


연명의료결정법은 2018년 2월에 시행되었다. 전국적으로 연명치료를 거부한 사람은 2020년 12월 8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명의료 결정 제도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아무런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중단하는 것을 말하며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사전에 연명의료에 관한 본인 의사를 밝힐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 등록기관은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분증을 갖고 본인이 직접 방문해서 본인 확인을 한 후 상담과 신청서를 작성하면 된다. 혹시라도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취소할 수도 있다.


#연명치료 #장기기증 #죽음에대한자기결정권 #웰다잉 #시어머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등록증 #연명치료거부카드발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