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로의 밤 기차여행

무작정 떠난 여수 여행 추억 속의 아주머니

by 정아

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는지 연일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 오후 잠시 주춤해서 비가 그치나 하고 기대를 했건만 오늘은 계속 쏟아지고 있다. 에세이 글이 올라오는 것을 읽으며 여수 여행이 떠올랐다.

언니와 같이 서울살이를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살던 20대 후반이었다. 직장에서 뒷정리까지 하고 나온 시간은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기엔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친구와 나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여름을 향해 가고 있던 6월의 밤이었다. 기온이 적당히 시원하고 바람이 좋았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우리는 익산역 광장으로 향했다. 익산역 광장에 도착한 우리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없이 수다를 떨었다. 저쪽 어디에서 들려오는 기타 소리와 노랫소리에 간혹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던 중 여수 이야기가 나왔다. 여수에 가자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도 모르게 동의를 했다. 그날은 익산역의 분위기에 취했었나 보다. 그렇게 한밤중에 우리의 일탈이 시작되었다. 그때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둘은 공중전화에서 집으로 전화를 해서 허락을 맡고 기차표를 확인하러 달려갔다.

마침 여수로 가는 밤기차는 남아있었고 서로 얼굴을 잠깐 쳐다보다 누구랄 것도 없이 예매를 했다. 기차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주크박스처럼 계속 흘러나오는 대학생들의 기타에 맞춘 노랫소리에 같이 흥얼거렸다.


시간이 흘러 기차가 도착했고 우리는 여수 가는 기차에 탑승했다. 처음으로 밤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우리는 너무 신나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수에 도착할 때까지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잠깐 눈을 감고 한숨 자기로 했다.


여수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여수역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향일암에 가려고 여수역 승무원에게 물었다. 아침 첫 버스시간이 아직 남아 있어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기차역 밖으로 나와 근처에 우비를 살 곳을 찾았다. 새벽 낚시꾼들이 이용해서인지 낚시용품 가게는 문이 열려 있었다. 우비를 두 개 구입해서 입고 역무원이 알려준 근처에 있는 여수항으로 이동했다.

여수항에는 새벽안개와 물안개가 자욱했다. 인적 없는 여수항을 우리는 그냥 걸었다. 친구는 두 팔을 벌려 하늘을 바라보며 뛰어가며 외쳤다.

“자유다! 너무 좋아!”

“나도! 너무 좋아!”


그렇게 잠시 돌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하던 우리에게 누군가가 달려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거기서 나오세요!”


우리는 둘이 마주 보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그냥 걷기 시작했다.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거기 아주머니 두 명! 빨리 나오세요! 거기는 위험해요!”


우리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온 아저씨는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자며 당신의 사무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사무실에서 우비를 벗고 따뜻한 차를 건네받았다. 차 한 모금에 온 몸이 따뜻해져 왔다. 아저씨는 그런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떼었다.


“아주머니 아니고 학생이네, “무슨 일로 여기를 새벽에 왔어?”

“아까는 깜짝 놀랐잖아. 아주머니가 물에 빠질까 봐 얼마나 놀랐는지. 새벽에 여기 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가끔 사고가 나지”


아저씨의 말은 이랬다. 처음 친구가 먼저 가고 내가 뒤따라 갈 때 친구는 가려져서 보이지 않고 나 혼자 걸어가는 것이 보였더랬다. 비가 오니 가방을 앞에 맨 채로 우비를 입고 여미었더니 멀리서 보니 그게 딱 임신한 아주머니 모습이었더랬다. 그럴 만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고, 물안개와 새벽안개로 앞이 멀리 보이지 않았었다.

아저씨는 다행이라며 큰 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친해진 우리는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스 시간이 되어 아저씨와는 헤어졌다. 향일암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며 한참을 웃었다. 향일암과 돌산대교를 거쳐 여수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의 여수행 밤기차 여행은 우리에게 즐거운 추억을 남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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