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책상 정리를 하다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예전에 언니와 함께 등산을 다녀온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둘은 20대 한창때였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속에서 언니는 생생한데 나는 웃고 있는 데도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등산을 좋아하는 언니와 함께 20대에는 산을 많이 다녔었다. 유난히 주말이면 어느 산이든 잘 찾아서 혼자라도 다녀왔다. 그런 언니에게 거의 끌려다니다시피 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살던 시기라 서울 인근에 있는 관악산, 도봉산, 북한산, 인왕산, 수락산 등 참 많이 다녔다.
산은 참 다양하고 신성했다. 같은 산을 같은 시기에 같은 등산로를 따라가더라도 매일매일 산이 주는 느낌이 달랐다. 사계절마다 그 느낌과 색깔 또한 매우 다양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다녀보면 산마다 더 예쁜 계절이 있었다.
봄은 향긋하고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싹을 보며 초록 내음이 몸 안에 가득 담아지는 느낌이랄까, 몸도 마음도 초록 향기에 정화가 돼서 깨끗한 마음이 되어 하산을 했다. 집에 돌아와 한동안은 그 기운을 받아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게 됐다.
여름을 맞이한 산은 녹음 더 짙푸르게 우거져서 한층 성숙한 느낌이 들었다. 가는 곳마다 계곡을 우렁차게 흘러내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힘들 때마다 계곡물에 손을 담그면 뜨거운 기온에 흐르던 땀이 쏙 들어갈 정도로 차가웠다. 그렇게 여름의 산은 더위에 사회에 찌든 영혼을 짙푸른 녹음과 시원한 냉기로 싹 가라앉혀주었다.
가을에 찾아간 산은 오색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나를 맞이했다. 한 해 동안의 결실을 맺은 이름 모를 열매가 가득했다. 나무마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느라 수고했다고 스스로 자축하는 것처럼 형형색색의 웃을 갈아입고 뽐내고 있었다. 그런 때는 누구랄 것도 없이 너무 예쁘고 화려했다. 가을 산을 갈 때 사람들은 더 예쁜 등산복을 입는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의 모습을 가는 곳마다 많이 불 수 있는 것이 가을 산이었다.
가을 산은 단풍이 물든 예쁜 모습에 취해 산을 찾아오는 방문객이 제일 많은 시기라 등산할 때 복잡한 도로 사정과 주차 등의 번거로움은 산을 본다는 만족감으로 대체하면서 감수해야 했다. 사람 구경을 하는 그런 맛에 가을 산을 가기도 했다.
하얀 눈이 덮인 겨울 산은 등산을 하기에 가장 어려운 시기라 조심해야 하지만 정상에 섰을 때 가장 예쁜 계절이기도 했다.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어 놓은 것은 세상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화된 것 같았다. 겨울 산에서 보는 일출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하얗게 눈꽃이 핀 정상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일출을 기다린 보람을 지평선 너머로 아침에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그 모든 고난을 보상해 주기에 충분했다.
겨울산을 오르던 언니와 나는 아이젠을 하고도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미끄러지면서 힘겹게 오르던 우리는 항상 낯선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언제나 너무도 친절하고 상냥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도와주면 우리는 싸가지고 간 음식들을 나눠주고 같이 먹는 것이 감사의 표현이었다.
고마움의 표현으로 산 아래에서 파전에 동동주를 먹는 그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한잔 하는 것 또한 산에서 만난 사람이기에 가능했다.
등산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가는 것처럼 우리는 전문 등산인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산을 다니다 보니 서울을 벗어나 등산을 하기도 했다. 산에서 한 번 우연히 만난 사람을 다음 산행에서 다시 만났고, 또 그다음 산행에서 다시 만났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을 언니는 인연이라며 반가워했고, 그 사람 역시 매우 신기해했다. 약속하지 않았지만 산에서 보는 사람들은 다시 만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산에 가면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와 함께 등산을 하는 아버지, 친구들과 함께 온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들, 같은 티셔츠를 입고 두 손 꼭 잡고 오는 커플, 정장에 구두를 신고 왁자지껄하게 왔다가 중간에 가는 모임 회원들도 있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았던 것은 도봉산에는 매번 갈 때마다 정상에 얼마 남지 않은 능선에서 친구들과 풋고추와 오이에 막걸리를 딱 한 잔씩 하시는 나이 지긋한 분이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우리에게 오이를 나눠주셨던 기억이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젊은이들, 산에 오를 때 힘드니까 막걸리 한 사발씩 하고 가요. 한 사발은 괜찮아”
“그럼, 오이라도 먹고 가. 물보다는 오이가 훨씬 나아요”
북한산에서는 나이가 다섯 살, 일곱 살 정도 되는 남매가 산을 어른보다 더 잘 올랐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하나도 안 힘들어요. 아빠랑 산에 오니까 좋아요"라고 했다. 마치 다람쥐처럼 날쌔게 산을 타는 모습에 숨을 헉헉거리는 날 보며 언니는 아이들보다 저질체력에 산을 못 오른다고 놀렸다. 그 아이들의 아버지는 아이 둘을 데리고 산을 자주 올라와서 우리는 북한산에 가면 그 아이들을 봤던 기억이 났다.
이렇게 글을 쓰니 꼭 등산을 매우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는 등산을 잘 못한다. 언니가 어르고 달래는 그 성화에 같이 다니면서 그래도 앞서가는 언니가 기다려줘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매번 산 입구에서 포기하고 내려오려고 하면 언니는 나를 질질 끌고라도 정상에 올라갔다. 그런 언니 덕분에 산 정상에 올라 ‘야호’도 외쳐 보았고 꽤 많은 산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 올라가면 언제 힘들어서 내려가자고 했냐는 듯이 신이 나서 어린애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며 깡충깡충 뛰어다닐 때도 있었다. 언니는 그런 나를 보며 엄마 미소를 지으며 ‘힘들어서 내려가겠다고 다시는 안 올 거라며’라고 말했다.
결혼 후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산에는 더 이상 가지 못했다. 산에 함께 오를 언니가 옆에 없어서일 이유가 가장 크지만, 체력이 안돼서 더 갈 수 없었다. 간혹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산에 갈 기회가 있었지만 나의 저질 체력은 동반인들에게 수고로움을 안겨줬다. 언니가 아닌 타인에게 그런 나의 모습을 들키는 것도 민망하고 함께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미안해서 가지 못했다.
등산은 언니의 취미였고 딱히 나의 취미였다고 취미가 아니었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지리산과 설악산은 가 봤으니 나의 다음 목적지는 한라산 오름에 올라보는 것이다. 올해 6월에 가고 싶어서 일정을 잡았으나 취소되었기에 많이 안타까웠다. 다시 제주도에 갈 일을 만들어 한라산 오름에 올라가려고 한다. 제주도 한라산 오름에 올라가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상쾌함과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