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형 사이

촌수 그런 건 너무 어려워요.

by 정아

엄마는 어느 날 뒤뜰에서 엉엉 울면서 큰소리로 ‘아니야’를 외치는 오빠의 목소리에 일손을 놓고 정신없이 달려 나갔다. 평소에 얌전하고 목소리가 조곤조곤하던 오빠가 큰소리로 엉엉 울면서 ‘엄마’를 목청껏 외쳤다. 엄마는 깜짝 놀라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순간에 무슨 일로 소란인지 싶었다.


그곳에는 막내 삼촌과 오빠가 서로 씩씩대며 노려보고 있었다. 오빠는 호기롭게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 두 눈에 힘을 불끈 줘서 그랬는지 울어서 그랬는지 모르는 새빨간 눈으로 삼촌을 노려보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를 불러서 두 아이를 달래라고 하고 부엌으로 가서 저녁 준비를 했다.


아빠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한 명 한 명에게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하라고 했다.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둘은 지지 않고 서로 이야기를 하려고 큰소리고 대답했다.


“내가 우리 형을 형이라고 하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아니야, 우리 아빠야!”

“아빠를 왜 형이라고 불러. 그러면 안 돼!”

“아니야, 우리 형이야!”

“아니야, 우리 아빠야!”


급기야 오빠는 눈물이 터져서 서럽게 다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울음소리에 엄마는 부엌에서 뛰어와 오빠를 안았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오빠의 눈에서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


자초지종 들어보니 아빠를 보고 부르는 호칭이 달라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빠를 부를 때 삼촌은 형이라고 했고, 오빠는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서로가 잘못이라며 왜 그렇게 부르냐고 따지다가 싸움까지 됐다. 두 사람은 아직 촌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어린 네 살 일곱 살이었다.


엄마는 맏며느리로 고조부모, 증조부모, 시부모와 8명의 시동생이 함께 사는 대가족의 집안 살림을 해야 했다. 큰아들인 오빠의 바로 밑에 여동생이 태어나서 큰아들을 돌봐줄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데다 삼촌은 바로 위의 형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같이 놀아 줄 사람이 없었기에 평소 둘은 죽이 잘 맞는 단짝 친구였다.


처음 아빠와 엄마의 결혼 혼담이 오고 갈 때 할머니는 막내 삼촌을 이제 막 낳은 뒤였다. 엄마가 시집왔을 때 할머니는 애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애가 바로 막내 삼촌이었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돼서 엄마는 오빠를 낳았고 그 후 애를 둘을 키웠다고 했다. 오빠와 삼촌은 세 살 차이가 났다. 어렸을 때는 삼촌과 조카가 뭔지도 모르고 집에서 삼촌이라고, 조카라고 하라니까 그렇게 불렀다.


아빠는 오빠를 학교에 일찍 보냈다. 집에서 혼자 있는 것이 안타까워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막내 삼촌과 오빠는 학교 2년 선후배가 되어 그렇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둘이 같이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영락없는 친구의 모습이었다. 어렸을 적 내 기억에도 정말 둘은 친구 같았다.

늦둥이 막내를 낳은 할머니는 외부 활동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창피해서 안 간다고 하시면서 엄마를 보내셨다. 삼촌에게 엄마는 형수이자 엄마였다. 엄마는 결혼해서 막내 삼촌이 고향을 떠나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로 갈 때까지 삼촌을 챙겼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막내 삼촌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가 혼자 시골에 계실 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를 부양하겠다는 의무감이었는지, 왜 고향으로 돌아온 건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할머니에게 새 집을 지어서 편하게 여생을 보내시도록 하겠다며 그 옛날 우리 집을 다 부숴버렸다. 아빠와 막내 삼촌은 새집을 짓느라 옛날 집을 부수는 일로 크게 다퉜지만 삼촌이 할머니의 설득에 성공했다.


우리의 옛날 고향집은 그렇게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마당에 가득 쌓여있던 나락을 보관하던 둥근 곡식 창고, 뒷마당의 음식 창고였던 지하 동굴, 할머니가 곶감과 사탕을 따로 보관했던(?) 장독대와 뒤뜰에서 감을 따서 홍시를 만들었던 감나무, 대식구 김치를 담그던 동네에서 처음 수도 펌프를 설치했던 수돗가, 화장실 갈 때마다 인사했던 닭장, 일꾼들이 살았다는 사랑방,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솥단지 두 개를 뒤집어 걸었던 대문 옆 앞마당, 잔치를 치르기 위해 대문 밖에 만들어 두었던 비닐하우스는 막내 삼촌의 한마디에 하나씩 허물어졌다.


그런 막내 삼촌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다. 오빠는 특히 더 각별했던 막내 삼촌의 건강 악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에게 기억되는 막내 삼촌은 운동을 많이 해서 다부지고 오빠와 친구 같은 그런 사람으로 기억된다. 건강을 회복해서 오래오래 사셨으면 하는 마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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