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잠을 설치게 한 드라마 정주행에 빠지다.
드라마 정주행을 시청하게 된 것은 10년 전 일이었다. 그때 나이 40대에 막 접어들 때였고 무기력증이란 녀석이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왔다. 정말 생활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남편의 출근과 아이의 등교만 시켜주는 정도였다. 남편은 아침밥은 부담스럽다고 먹지 않고 혼자 알아서 준비했다. 초등학생 딸아이의 아침식사를 챙겨주고 옷을 입혀주면 끝이다. 남편이 아이를 태워서 등교를 시켜주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 거실에 나와 휴대전화로 드리마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때 한창 TV에서 김은숙 작가의 ‘시크릿 가든’ 열풍이 불었다. 모두가 ‘주원(현빈의 극중 이름)’이를 좋아했고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유행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도 버거웠기에 준비물과 숙제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했다. 저녁 준비를 하고 바로 방에 들어와 누워버렸고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 누구를 만나지도 않았고 만날 일을 만들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약속이 잡히면 어떻게든 거절할 핑계를 찾아서 나가지 않았다. 매일 앉아서 멍하니 있거나 휴대폰만 쳐다봤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드라마를 봤다.
사람이 중심이 흔들리고 정신이 나가게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일상생활에 힘들어하면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그런 것조차도 싫었을 만큼 대인관계를 피했다. 이런 시기에 ‘시크릿가든’에 빠진 것은 오히려 하루하루 버텨낼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시크릿 가든’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시크릿가든’ 드라마를 좋아해서도, ‘주원’이를 좋아해서도 아니었다. ‘시크릿가든’에 빠지게 되었을 때는 이미 드라마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우리의 주원(현빈)’이는 해병대 입대가 정해졌다. 수많은 팬들이 군대에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과 해병대 군복을 입는 모습을 상상하는 설렘의 이중 감정에 떨리게 했었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자고 낮에 낮잠이 길어지는 생활을 지속하다가 어느 날 유튜브에서 ‘시크릿가든’을 보게 됐다. 그 뒤로 계속 드라마 동영상을 보다가 ‘시크릿가든’ 전편을 정주행 하게 됐고, 앞에서 보지 못했던 전편을 몰아보기 시작했다. 몰아보면서 ‘우리 주원이’를 편집해 놓은 동영상을 보고, 추천 동영상을 보고, 다음 추천 동영상을 보게 되는 것은 끝이 없었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김해정(가명) 씨한테 소리 좀 그만 지르세요. (중략) 나한테는 이 사람이 전도연이고 김태희입니다. 제가 김해정(가명) 씨의 열렬한 팬이거든요”
“우리 김해정(가명) 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 작년부터?”
이런 명대사 장면을 보고 또 보고 영상이 올라오면 재미있어서 또 보게 되었다. 그가 군대에 간 이후에도 드라마에서 나왔던 주원이가 하는 말과 길라임이 하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메신저 알림소리는 ‘00왔숑 00왔숑’이었다. 대화를 하다 보면 ‘그게 최선이야? 그럼 그렇게 해’라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그렇게 말했다.
‘시크릿가든’ 정주행을 하면서 올라오는 추천 영상을 통해서 주연배우들을 보게 됐고 현빈과 하지원이라는 배우의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두 배우의 팬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두 배우의 출연작은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어도 두 배우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보게 됐다.
시크릿 가든은 김은숙 작가가 극본을 썼고 신우철, 권혁찬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현빈, 하지원이 주연으로 김주원과 길라임 역을 맡았다. OST 열풍도 대단해서 현빈과 백지영이 각각 부른 ‘그 남자’와 극 중에 오스카가 부른 ‘눈물자리’, 성시경이 부른 ‘너는 나의 봄이다’ 등 OST 명곡이 많은 드라마였다.
드라마에 이어 OST 뮤직비디오를 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끝이 없는 동영상 천국이었다. 오늘 나온 뮤직비디오, 팬들이 편집해서 올린 뮤직비디오, 드라마를 편집한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동영상을 보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나는 점점 안정을 찾아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 10년 전 드라마 정주행은 도움을 주기도 했고 더 힘든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렇게 무언가에 빠져있지 않았다면 더 힘든 지경에 가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에게 위안도 주었다.
그때의 나를 옆에서 잘 참아주고 힘을 내라고 응원해준 가족에게 미안함과 고마음이 함께 한다. 힘들어하며 외출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던 나를 버텨내 준 내 가족, 특히 딸아이에게 미안함이 크다. 엄마의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할 나이였음에도 일찍 철이 들어서였는지 조용히 혼자 제 할 일을 알아서 해준 것이 기특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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