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부끄러움이란 게 생겼어요.

먼 길 돌아온 우산 심부름

by 정아

하루 종일 빗방울이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반복할 뿐 비가 개일 것 같지는 않다. 빗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밖에 나가기가 걱정스러웠다. 오전에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서 남편에게 곧 도착한다는 전화를 했다. 어제 나가기로 약속했던 터라 역시나 나가려고 준비를 마치고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에 볼일을 마친 우리는 카페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셨다. 창밖으로 두 명의 여자가 우산을 쓰고 철로를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찍느라 우산을 받쳐주기도 하고 씌워주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렸을 적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렸을 때 비가 오면 나는 남동생과 함께 중학교에 다니는 언니와 오빠에게 우산을 가져다주는 심부름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에게는 언니와 오빠가 우산을 가져가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우리 집과 중학교의 거리는 어른 걸음걸이로 4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그때 남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초등학생인 우리의 걸음으로는 1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처음 우산 심부름을 했을 때는 신기하게도 집을 잘 찾아왔다. 엄마는 심부름을 참 잘했다며 우리를 칭찬해주셨다.

그날도 비가 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우리에게 우산을 가져다주라고 했다. 우리가 중학교에 도착해서 오빠네 교실을 찾아가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건물 위쪽 창문에서 큰소리로 오빠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철수(가명)야, 동생 왔다!”

“야! 철수(가명) 동생이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나는 고개를 들을 수가 없었다. 시골마을이라 부모님까지 다 알고 지내는 작은 동네라서 인지 나를 알아보는 오빠 친구들이 있었다. 오빠는 창문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어 우리가 온 것을 확인하고 내려왔다.


우산을 받아 든 오빠에게 하나는 언니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오빠는 얼른 가라며 쏜살같이 교실로 들어갔다. 나와 동생은 멍하니 오빠가 달려간 곳을 쳐다봤다.


오빠와 헤어진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 나섰다. 용안에서 강경과 우리 마을로 들어가는 삼거리에서 길을 찾지 못했다. 골목길로 들어가는 곳을 찾지 못하고 한없이 앞으로만 걷고 있었다. 동생이 말을 했다.


“누나, 이 길은 아까 안 보던 길인 것 같은데”

“그래? 이상하다. 아까 이 길로 안 왔었나 보다”

“누나, 우리 길 잃어버린 거야?”

“아니, 금방 찾을 수 있어”


나는 동생을 그렇게 안심시키고 속으로는 걱정이 돼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이곳은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마을이었다. 마을 어귀에 적혀 있는 동네 이름도 처음 봤다. 가던 길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 나왔다. 한참을 걷다 보니 동생이 말했다.


‘누나 여기 본 것 같아 “

“역시 내 동생 똑똑해!”

“이거 봐, 여기 가게 아까 올 때 내가 봐 뒀었어!”


올 때는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던 간판이 반대편에서 보니 잘 보였다. 남동생은 돌아오는 길을 알기 쉽게 간판 이름을 외워뒀다고 했다. 동생 덕에 길을 찾아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엄마는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오는 우리가 걱정돼서 우산을 쓰고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남동생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왜 이렇게 늦었어. 무슨 일 있었냐?”

“길을 잘 못 가서 강경으로 갈 뻔했어요. 준호가 가게 이름을 잘 기억해서 찾아왔어요.”

“고생했다. 많이 놀랐겠네.”


엄마는 자고 있는 동생 등을 토닥이며 나를 보고 얼른 쉬라고 했다. 많이 놀라고 헤매느라 힘들었을 거라며 찐 감자를 주고는 먹고 한 숨 자라고 했다. 동생이 새근새근 잠자는 소리를 들으며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길을 잘 못 찾아서 힘든 것도 있었지만 오빠네 학교에서 내 이름을 불러대던 그 오빠들 때문에 너무 창피했었다. 오빠 친구들은 내 이름까지 큰소리로 불러대며 “철수 동생 정연이 왔다!”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그 이후로 오빠네 학교에 우산을 가져다주러 가면 더 많은 오빠 친구들이 내 이름을 자기 동생 이름인양 불러댔다.


하루는 엄마에게 우산 심부름 안 가면 안 되냐고 말씀드렸다. 언니랑 오빠가 비를 맞고 온다며 괜찮겠냐고 그러니 다녀오라고 했다. 우산을 미리 챙겨가지 않는 언니와 오빠가 너무 미웠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는 말을 들으면 언니와 오빠에게 말했다.


“언니, 오빠, 내일 우산 꼭 챙겨가!”


언니와 오빠는 웃으면서 알았다며 걱정마라고 했다. 그 이후에도 오빠가 졸업할 때까지 나는 몇 번인 가는 더 우산 심부름을 다녔었다. 오빠 친구들이 보기 전에 빨리 주고 싶어 숨어서 갈 때도 있었지만 탁 트인 학교에서 안 보일 리가 없었다. 내 이름은 그렇게 오빠 친구들에게는 다 같은 동생의 이름이 되었다.


가끔 오빠에게 동생 인양 내 이름을 불러대던 오빠 친구들의 소식을 들었다. 어느새 남동생과 오빠와 나는 중년에 접어들었다. 세월이 흘렀고 내 모습은 세월만큼의 흔적이 남았다. 오빠들의 영원한 여동생일 것 같았던 그 시절 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지금의 나도 썩 괜찮다.



#추억팔이 #우산 #심부름 #우산심부름 #오빠친구 #오빠 #중학교 #초등학생 #영원한여동생 #여동생 #언니

#남동생 #중학생 #비오는날 #일기예보

작가의 이전글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