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열리는 사과 두 개

by 정아

“사과가 열렸네.”

“잘 익었네, 잘 익었어.”


선생님과 친구들이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모아 원을 만들어 내 볼에 가져다 대면서 하는 말이었다. 겨울이 되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장난 삼아 동그라미를 만들어 들이대며 빨간 볼을 더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그게 싫어서 얼굴을 태워본 적도 있지만 일주일이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추운 겨울이 되면 유난히 하얗던 내 얼굴에는 사과가 열렸다. 찬 기온에 얼었던 몸이 교실 안 난로 옆에서 불을 쬐면 금방 빨갛게 상기되었다. 그런 내 얼굴을 보면서 놀리는 말이었다. 하얀 피부는 내 얼굴을 더 잘 보이게 했고 작지 않은 얼굴이 멀리서 뚜렷하게 잘 보였다.


9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 온 엄마는 미용기술을 배워서 우리 머리를 잘라주었다. 30명에 가까운 식솔들을 챙기느라 바쁜 엄마는 딸의 머리를 아침마다 빗질해서 예쁘게 손질해 줄 수가 없다며 언니와 내 머리는 항상 바가지를 눌러놓은 것처럼 동그랗게 잘렸다. 언젠가 한 번은 싫다고 울어댔지만 내 머리 모양은 바뀌지 않았다. 동그란 바가지 머리를 한 내 얼굴은 동그랗게 익어가는 양 볼을 더 잘 보이게 해 줬다.


중학교에 들어간 언니는 머리를 길러 양 갈래로 예쁘게 땋았다. 그 이후 언니의 머리는 바가지 머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바가지 머리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단발머리로 조금 길게 변했지만 언니처럼은 되지 않았다. 약간 긴 바가지 머리의 변형이라고나 할까.


중학교 다닐 때였다. 복도에서 만난 여선생님 한 분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남방셔츠의 가장 위 단추를 끼워주었다. 멀리서 보는데 너무 하얘서 깜짝 놀랐다며 채우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 뒤로 남방셔츠를 입을 때면 단추가 신경 쓰였다. 언니가 선물해 준 남방이어서 유난히 즐겨 입던 옷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입지 않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피부가 하얗고 빨갛게 올라오는 홍조가 더 두드러지는 것이 싫었고, 너무 하얘서 징그럽다고까지 했던 선생님 때문에 내 피부색을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넌 피부가 하얘서 좋겠다.”라며 부러워했지만 난 그렇게 좋아하지 못했다.


요즘은 메이크업 베이스, 미백크림, 파운데이션 등 화장품이 좋아서 얼굴의 홍조는 보이지 않는다. 추운 겨울이면 여지없이 내 얼굴에는 사과가 익어갔다. 화장기 있는 얼굴 위로 살짝 홍조가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얼굴이 빨개졌네.”라며 놀릴 때가 간혹 생기면 어릴 때 생각이 나곤 한다. 지금은 어릴 때보다는 색깔이 탁해지고 여전히 홍조를 띠는 얼굴이지만 싫지만은 않다.


내 유전인자는 우성인자였나 보다. 딸아이 피부는 나보다 더 하얗다. 내 손에 자기 손을 갖다 대면서 “엄마는 왜 까매졌어요”라고 말하는 딸의 말에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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