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난 건 대타였어!

선택의 길 위에서 항상 최선이고자 합니다.

by 정아


"소개팅할래?"

"안 해요."

"한 번만 나가주라. 부탁이야"

"싫어요. 그런 거 안 해요."

"사람 좀 살려주라. 제발! 너도 어차피 저녁은 먹을 거잖아. 밥 먹는다 생각하고 맛있는 저녁 먹고 와. 사람 한 명 살려준다 생각하고 한 번만 나가줘라."


첫 만남의 시작은 그랬다. 소위 땜빵!이라고 하는 대타로 시작했다. 지인 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거절을 잘 못했던 나는 그렇게 입은 옷 상태 그대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불려 나갔다.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준수한 외모에 조용한 말투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눴다. 말끔하게 신경 써서 차려입고 나온 상대에게 별생각 없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나갔던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면서 녹차를 마신 게 전부였다. 퇴근 준비를 하는 나에게 언니는 이것저것 물었다.


"저녁 뭐 먹었어? 어땠어? 인상은? 무슨 말 하디? 너는 어땠는데?"

"하나씩 물어봐요. 저녁은 무슨 밥도 못 먹었어요. 맛있는 저녁 먹고 오라더니 쫄쫄 굶었잖아요."

"저녁 안 먹었어? 밥 안 사줬다고? 왜 밥도 안 사주고 헤어졌대? 사달라고 하지 그랬어."

"초면인데.. 그리고 또 만날 거 아니니까, 뭐 신경 안 써요. 어차피 이제 다시 안 볼 거잖아요."


그날의 만남은 그렇게 헤어진 후로 끝이었다. 당일 소개팅이 약속되어 있던 사람이 마땅치 않은 일이 생겨 자리에 나올 수 없었다. 소개팅을 주선한 사람은 시간이 바짝 다가와서 취소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 불똥이 나에게로 번졌다. 말 그대로 맛있는 저녁식사 한 끼 먹는 샘 치고 나갔던 자리였다. 그런 소개팅이라는 불편한 자리가 그렇게 맛있는 식사가 될 수도 없는 자리였다는 걸 알았지만 거절을 못한 내 잘못이었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그것도 이성과의 처음 본 자리에서 식사를 할 용기는 어디에서 생긴 건지 무모하고 용감했던 나였다.


"전화 왔어?"

"무슨 전화요?"

"왜 어제 그 남자"

"에이 전화가 왜 와요. 그냥 나간 건데. 그분도 다 알아요."

"그래도 혹시 아니?"

"됐어요. 싫어요."


다음 날이 되니 언니는 추궁하듯 물었다. 서로가 연락은 없었다. 당시 정말 대타였기에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녹차 한 잔으로 '퉁' 친 거라 생각했다.


이틀 뒤 출근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근무지로 꽃바구니가 배달되었다. 그날은 화이트데이였고 수신인은 내 이름으로 되어있었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찾아봐도 발신인이 안 보였다. 누가 보낸지도 모른 채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보낸 사람이 연락이 오려니 했다. 언니는 옆에서 빨리 전화해보라고 성화였지만 나는 보낸 사람을 알 수 없어서 실수를 할까 봐 연락하지 않았다. 저녁이 돼서야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꽃바구니는 잘 받으셨어요?'

'꽃바구니 보내셨어요? 이름이 없어서 몰랐어요.'

'꽃바구니 보낼 사람이 많으신가 봐요'

'글쎄요.'

'퇴근 언제 하세요? 끝나고 만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꽃바구니까지 받았는데 그냥 '바빠요. 싫어요. 약속 있어요.'라는 말로 거절할 수가 없었다. 거절을 못하는 나의 병이 여기서도 나왔다. 그날은 웬일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첫날 먹지 못한 저녁을 두 번째 만남에서 먹게 되었다. 나는 그걸로 끝일 줄 알았다. 처음 소개팅 자리에서 대타라는 생각에 워낙 부담 없이 편하게 대했었고, 대타라는 사실을 상대가 알았기에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 당시 나는 결혼도 연애에도 관심이 없었던 터라 만남 자체를 하지 않았었고, 누구든지 소개팅 제의가 들어오면 단칼에 거절했던 터였다. 성격상 한 번 만난다는 게 불편하고 몇 번이라도 자꾸 만나야 된다는 게 신경 쓰였기에 처음부터 그란 자리를 만들기를 꺼려했었다. 그런 내가 대타라니!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그 이후로 상대는 매일이다시피 퇴근 후 근무지로 찾아와 나의 퇴근을 기다렸다. 매몰차게 가라고 하지 못하고 만남은 지속됐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됐다. 자상한 성품과 조용조용한 말투, 차분한 인내심, 그리고, 매일 찾아오는 그의 정성에 시나브로 내 감정이 젖어들어 간 듯하다. 그태 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에 속은 것 같다. 소개팅 대타가 만들어 준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때의 나의 선택이 지금의 우리 가족을 만들어줬다.


훗날 첫 만남에서 저녁식사를 안 한 이유를 물었었다. 남편은 어디서 들었는지(출처는 심증으로 시어머니 같지만)마음에 드는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 저녁을 먹으면 만남이 깨진다는 설이 있어서 상대가 맘에 든다면 절대 밥은 먹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다며 멋쩍은 미소를 띄었다.


삶을 살아오면서 '선택'이라는 갈림길에서 수많은 갈등을 한다.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최고의 선택일지는 모르지만 항상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한다.


"당신을 만난 건 대타였어! 그건 우리에게 행운이었던 거지? 당신이 있어서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낸 것 같아. 고마워요."


#선택 #대타 #최선 #소개팅 #녹차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