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검사를 하러 오신 어르신에게 보호자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배우자 연락처를 여쭤봤을 때의 일이었다.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며 휴대전화 저장 목록을 찾아보다가 잘 못 찾겠다며 전화기를 건네고는 찾아달라고 하셨다. 알려주신 배우자 성함이 보이지 않았다. 어르신에게 성함을 다시 물어보고 찾으려고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었다.
"남편 이름 없어요. '남의 편'이라고 되어 있을 거예요. 며칠 전에 하는 짓이 하도 미워서 '남의 편'이라고 바꿨어"
그렇게 말씀하시며 곁눈으로 흘깃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밖을 바라봤다. 젊어서 속을 너무 많이 썩여서 힘들었다고 했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도 웃음이 나기도 했다.
내 휴대폰에 저장된 남편 연락처에도 그랬던 적이 있었기에 더욱 공감이 갔다. 남편은 내편이 아니라 어머니 편이라고 해야 맞았고, 친구들 편이라고 해야 맞았다. 금기어처럼 어머니와 친구들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은 들으려조차 하지 않고 말 첫머리도 꺼내지 못하게 입을 막아버렸다. 그냥 좋은 말만 하기를 바랐다.
좋은 말, 예쁜 말만 하면 참 좋겠지만은 그렇게 안 했으면 하는 말은 할 수도 있는데 그것조차 막아섰다. 이제는 그럴 일도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특성이 내 몸에 마음에 스며드나 보다. 이제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생가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대부분의 것을 내려놓았다.
치매검사를 하러 오신 어르신은 검사 끝에는 결국 눈시울을 붉히셨다. 치매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눈물을 뚝뚝 떨구시며 "내가 왜 그러고 살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나중에는 이렇게 될 것을..."
남편이든 남의 편이든 지금 같이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어르신 두분도 건강을 지키며 오래오래 잘 살아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