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싸늘한 기온이 온몸을 감싸고 돌아서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설쳤다. 몸을 뒤척이며 얇은 여름 이불을 얼굴까지 잡아당기며 잠을 청해 보지만 싸늘함에 선잠을 잤다. 새벽녘에야 일어나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 덮었다. 한기가 느껴져 이불을 바꿨다. 포근함에 금세 깊은 잠이 빠졌다.
깜빡 잠에 취한 나는 알람을 듣지 못한 채 늦잠을 잤다. 잠결에 느껴지는 싸하고 이상한 느낌은 틀린 적이 없다. 까딱하면 지각할 상황이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물 한잔과 우유 한잔을 마셨다. 신호가 걸리지 않기만을 바라며 도로에 접어들었다. 다행히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신호와 도로 상황은 무사했고 주차까지 잘한 후 가방을 들고 서둘러 걸었다. 턱밑까지 차오른 가쁜 숨을 '휴'하고 내뱉었다.
요즘 나의 일상은 정신없는 업무파악과 인수인계는 들어도 적어도 매일이 새롭기만 했다. 어제 들은 이야기가 오늘 실전에서는 다른 이야기처럼 낯설기만 했다. 어제 했던 업무를 오늘 하는데도 새로운 일만 같았다. 나이 탓이라고 말한다면 부정은 하지 않겠다. 오늘 이 시간에 보는 책의 내용도 분명 보았던 것인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머릿속은 깨끗하고 하얗기만 했다.
점심시간에 동기들과 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 이하루 중 제일 행복했다. 커피를 다 마시지도 못하고 손에 들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가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은 노란색과 초록색의 혼합이었다. 가을은 그렇게 나의 생활 속으로 슬며시 스며들었다. 앞에서 뒤에서 들리는 잔잔한 수다스러움이 귀를 간지럽히는 그 느낌조차 행복했다. 점심시간의 짬, 여유로움이 남은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해 줬다.
오후도 여전히 정신없다 한가했다를 반복하다 보니 6시가 되었다. 가방을 들고 뒤도 보지 않고 입으로는 큰소리로 "내일 봐요"를 외치며 몸은 벌써 출입문 앞에 서 있었다. 하루가 이렇게 살아졌다. 나와 너의 그리고 나의 동기들의 하루가 이렇게 또 사라졌다. 내일은 토요일 일요일이 있는 주말이다. 생각만으로도 좋다.
호박과 김치를 넣어 만든 얼큰 수제비
5년 새에 텃밭 농사꾼이 다 된 듯한 지인으로부터 호박 두 개를 받았다. 지인 텃밭에서 나오는 올 해의 마지막 애호박인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밀가루부터 찾았다. 반죽을 해서 비닐팩으로 덮은 후 냉장고에 잠시 보관했다. 바로 호박을 헹궈서 듬성듬성하고 투박하지만 먹기 좋게 썰었다. 국물 육수 팩을 넣고 육수를 먼저 우려냈다. 우려낸 멸치국물에 김치를 쫑쫑 썰어 넣었다. 김치 국물을 살짝 넣어주는 것은 센스 작렬한 선택이었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반죽을 꺼냈다. 손에 물을 조금 묻힌 후 손으로 최대한 넓고 얇게 늘려 적당량을 떼어 낸 후 끓는 육수에 살포시 넣었다. 준비한 반죽을 모두 떼어 넣었다. 다진 마늘과 송송송 파를 썰어 넣은 뒤 액젓으로 간을 맞췄다. 이젠 충분히 끓기 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완성이었다.
한소끔 끓어오를 동안 밑반찬을 꺼냈다. 얼마 전 담가 둔 오이장아찌와 고추장아찌를 꺼내고 시어머니가 보내준 깻잎장아찌까지 꺼내놓으면 상차림은 준비 완료. 그릇에 얼큰하게 먹기 좋은 수제비를 담아내면 저녁 준비가 완성됐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은 뜨끈한 수제비 한 사발을 더욱 맛있게 만들어줬다. 식사하는 내내 우리 가족은 조용했지만 식탁에는 '후루룩' 소리로 가득 찼다.
얼큰한 호박김치수제비
뜨거운 여름을 견디고 텃밭에서 난 호박
호박과 김치를 넣은 얼큰하고 따끈한 수제비 한 그릇이면 주말의 별미음식으로 최고다.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과 딸이 있어서 이렇게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들게 된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오늘 날씨는 여름으로 다시 돌아갔다. 내일의 날씨는 가을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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