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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하 Oct 14. 2021

글을 쓰고 싶어질 때가 있더라고요.

에세이 5기를 마치며

  글을 쓴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에세이라는 것은 특정 작가나 인지도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써야지 된다는 일관된 생각이 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지만 누구든지 쓰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든 글을 쓰고 있다는 현실의 세계는 알게 되었다.    


  볕이 좋은 어느 날 오후에 날라든 메시지는 '에세이를 쓴다기보다는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이야기를 그냥 한 번 글로 써 보는 건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싶어 지게 만들었다. '굳이 에세이라고는 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에게 보이는 글이 아니어도 되잖아'라고 나의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변명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었다. 그것이 글을 쓴다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평소에 글을 잘 쓰지 못해도, 누구나 쓸 수 있는 통로가 많은 요즘 추세에 맞춰서 그런 방향으로 해도 좋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평소에 누구에게 내 글이 읽히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 나 스스로를 '모바일 혹은 SNS, 비대면 소통에 대한 낯가림이 심하다'라고 단정했다. 그렇다고 말로 소통하는 것에는 낯가림이 없다거나, 탁월한 언변의 대화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 데다가 활자로 실시간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것은 유독 더 불편해했고, 어렵다고 스스로를 평가해왔다. 지인들에게 공공연하게 말을 하기도 했다. 평소에도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다가도 먼저 전화를 거는 게 더 편한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그런 내가 지면에 활자를 써 내려간다는 것은 더욱이 겁이 났고 긴장됐다. 내 경험과 생각을 타인에게 노출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 작업이었다.    


  그런 엄청난 부담감과 소심함을 갖고 있는 내가 그날은 무슨 용기로 한길문고에 전화를 해서 당당하게 참석하겠노라고 연락처와 이름을 남겼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날의 볕이 너무 좋아서 나의 꾸덕꾸덕한 눌린 감정들을 모조리 뽀송뽀송하게 말려주었나 보다.     


  시작은 어찌 되었든 대장정의 글쓰기 수업은 시작됐고 첫 숙제가 나에게 주어졌다. 그날의 심장은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함이 내 가슴을 짓눌렀고 며칠 동안 그 느낌 그대로 지속됐다. 화두를 꺼내지 못했고 소재를 찾지 못해서 첫 단어 앞에서 계속 깜빡이는 커서는 '그래서 너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라고 말하듯이 두 눈을 깜빡이며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퇴근 후 며칠 저녁을 컴퓨터 화면 속 커서와의 눈싸움으로 시간을 보냈다. 지속되는 깜빡거림에 결국 내가 지고 말았다. 거실 바닥에 벌러덩 드러눕기를 몇 차례 하고 나서도 한 단락을 넘어서지 못했고, 며칠이 지났을까. 숙제를 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처음 수업을 듣기로 결심하면서 했던 나와의 약속은 ‘숙제는 꼭 해내는 것’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첫날부터 숙제를 늦게 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했다.    


  방문상담을 다녀오는 길에 늘어진 가지 사이로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감탄을 연발하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그 마음 그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짧은 시간에 글을 얼추 완성해나갔다. 얼렁뚱땅 숙제는 완성이 되었고 그 글을 다시 읽어볼 용기는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눈 딱 감고 제출을 눌러 보내기를 했다.     


  그 후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내 글을 오마이뉴스와 브런치, 블로그에 끊임없이 올리기 시작했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을 목표로 오마이뉴스에 한 달에 7개의 글을 쓰고, 브런치에 한 달 동안 하루에 한 개의 에세이 쓰기, 블로그에 하루에 한 개의 포스팅하기를 꾸준히 해보기로 정했다. 매일이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고, 그럼에도 내가 정한 숙제는 해야겠고 쓸 소재는 부족하고 쓸 말은 한정됐다. 알고 있는 단어와 글의 수준은 내 안에서 갇혀있었고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반성하는 하루하루가 길어만 갔다.     


  지금에 와서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어렵게 토할 것처럼 답답함과 고민 속에서 적어 내려갔던 글들이 모아져서 남아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잠시 글을 쓰지 않기로 했지만 아직 남아있는 올해의 목표는 그대로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씩 정리가 된 후에 다시 시작할 글쓰기를 생각하니 조금 설레는 마음이 생겼다면 처음과는 다른 아주 큰 변화가 아닐까. 가끔 아주 가끔은 점심 산책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사 들고 거닐며 느껴지는 바람이, 혹은 동기들과 수다를 떨며 나눈 대화 속에서, 때로는 혼자 멍하니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에 나온 사람들을 보며 글을 쓰고 싶어지기고 했고, 소재가 보였고, 생각나기도 해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글을 써서 올려야겠다는 마음이 들곤 했다. 반짝이는 무언가가 머릿속에 스치는 별처럼 느껴질 때 감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 초보 에세이스트에겐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의 글이 쌓여간다면 그걸로 족한 일일 수도 있고, 그 글이 모아져서 책으로 나온다면 더욱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겠지. 올 해는 또 다른 어떤 일이 나에게 생길 것 같아 내가 나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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