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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산적독서가 Sep 04. 2021

독후감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저

미래의 역사


책 제목 : 《호모 데우스》

저자 :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교수)


책의 부제 미래의 역사에서 보듯 이 책은 인류의 미래를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인류를 神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뜻으로 원래 호모사피엔스를 호모데우스로 만든다.

쉽게 말하면 인류가 신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짐승 수준이던 우리 인류는 스스로 살아남았다.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 

현대의 과학과 문화는 죽음을 형이상학적 신비로 생각하지 않으며, 당연히 죽음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지도 않는다. 오히려 현대인에게 죽음은 기술 발달로 극복해 낼 문제라고 본다. 


죽음을 해결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지만 그 기회는 선택된 일부 부자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면 나머지는? 

기술의 상징인 데이터, 시스템 또는 알고리즘에 의하여 과거 인간이 동물들에게 했던 그대로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언이 아니고 확률론에 따른 예상이라고 한다.

듣기에 섬뜩한 이야기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지금 살아있는 인간의 세대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에덴동산에서 수렵채집인으로 살던 아담과 이브를 쫓아내며, 분노한 신은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야만 빵을 먹을 수 있는” 저주를 내렸는데 이는 오늘의 언어로 농업혁명이라 할 수 있다.

농업혁명 시대에 인류가 상상으로 만든 신을 믿는 종교를 탄생시켰고, 

과학혁명은 신이 아닌 인간을 믿는 인본주의 종교를 탄생시켰다. 인본주의 종교는 신이 아닌 인간을 경배한다.

여기서 인본주의 종교는 자유주의, 공산주의, 나치즘 같은 사상적 선택을 말한다. 이들의 창립이념은 호모 사피엔스는 특별하고 신성한 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우주의 모든 의미와 권위가 인간 본연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눈에 보여야만 믿는 객관적 의미, 

나만이 아는 주관적 의미 , 

나와 우리가 함께 상상할 수 있는 상호 주관적 의미가 있다.

사피엔스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법, 힘, 실체, 장소 등 상호 주관적 의미망을 통하여 세계를 지배한다. 


약 5,000년 전 수메르인들이 문자와 돈을 발명하여 인간 뇌의 데이터 처리 한계를 깼다. 이로써 수십만 명에게 세금을 징수하고, 복잡한 관료제를 조직하고, 거대한 왕국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수메르에서는 인간인 성직자와 왕이 신의 이름으로 왕국을 운영했다. 이집트에서는 성직자와 왕과 신을 융합해 살아 있는 신 파라오를 창조하기도 했다. 


이것은 말하자면 모두 다 신이 아닌 인간이 하는 일이다. 상상력이 만든 상호 주관적인 의미인 신을 이용하는 지배구조였던 것이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똑같이 천국을 믿었지만, 천국에 이르는 방법만 서로 달랐다. 마찬가지로 냉전시대의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는 똑같이 경제성장을 통해 지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전혀 달랐다. 


이제는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걸 안다. 왜냐하면 정해진 크기의 파이를 나누는 제로섬 게임 시대는 지났으니까.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지식이다. 


요즘 자본주의의 특정 형태가 장기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널리 인정되고, 탐욕스러운 재벌, 부농, 표현의 자유는 보호받고 있지만, 그러한 자본주의에 방해가 되는 생태환경, 사회구조, 전통가치 들은 해체되고 파괴되고 있다. 


지나친 인간 중심의 현대 자본주의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이야기다.


체스 경기자는 투자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반면 현대의 보드게임과 컴퓨터 게임들은 대부분 투자와 성장에 중점을 둔다. 


체스게임은 제로섬 게임이지만 현대의 게임은 투자와 성장이 가능한 게임이다.


세계를 크기가 고정된 파이로 보는 전통적인 세계관은 이 세계에 오직 두 종류의 자원만 존재한다고 본다. 바로 원재료와 에너지이다. 하지만 실은 세 종류의 자원이 존재한다. 원재료, 에너지 그리고 지식이다. 원재료와 에너지는 사용하면 할수록 줄어들지만 지식은 사용하면 할수록 늘어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원 희소성 문제를 극복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현시점에 현대 경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생태계 붕괴라는 인과응보이다. 과학의 진보도 경제성장도 부서지기 쉬운 생물권 내에서 일어나므로, 과학과 경제가 전속력으로 달리면 그 충격파로 생태계가 불안정해진다. 


천국을 믿는 사람들에게 핵무기를 주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최첨단 방주를 믿는 사람들에게 지구 생태계를 맡겨서는 안 된다.


천국으로 가기 여하여 공멸의 길인 핵무기를 사용하면 안 되듯, 방주를 믿고 생태계를 무한 파괴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무엇이 근대사회를 붕괴에서 구했을까? 인류를 구원한 것은 수요공급의 법칙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른 혁명적 종교인 인본주의였다.


이제 인본주의라는 현대 사조를 종교라는 이름으로 풀이해 본다.


중세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의 공식은 지식 = 성경 ×논리였다. 어떤 중요한 질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성경을 잘 읽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과학혁명은 지식에 대한 사뭇 다른 공식을 제안했다. 그것은 지식 = 경험적 데이터 ×수학이다. 어떤 질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그 질문과 관련한 경험적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수학적 도구를 이용해 그 데이터를 분석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인본주의가 여기에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인간이 스스로를 믿으며, 윤리적 지식을 얻는 새로운 공식이 나타났다. 그것은 지식 = 경험×감수성이다. 윤리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내면의 경험을 꺼내 예리한 감수성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수년간 경험을 쌓고, 그 경험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감수성을 갈고 닦아야 한다. 


자유주의가 직면한 위협들! 

째, 인간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인간의 가치를 완전하게 잃는다.

째, 인간이 집단으로서의 가치는 유지하더라도 개인은 권위를 잃고 외부 알고리즘의 관리를 받게 된다.

째, 일부 사람들은 업그레이드 되어, 해독 불가능한 상태로 살아남아 소규모 특권 집단을 이룰 것이다.


21세기의 신기술들은 이렇게 인본주의 혁명을 뒤집어, 인간에게서 권한을 박탈하고 알고리즘들의 권한을 강화할 것이다. 유기체가 알고리즘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생명과학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업그레이드된 상위 계급과 나머지 구성원들 사이에 육체적ㆍ인지적 능력 차이를 실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20세기의 수많은 획기적인 의학 치료들도 부자들이 먼저 시작했지만 결국 인류 전체가 혜택을 보았고, 그런 치료들은 사회적 격차를 좁히는 데 기여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백신이나 항생제의 경우 처음에는 서구 국가의 상위 계급에만 혜택이 주어졌지만 지금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린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21세기에도 그대로 반복될 것이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20세기 의학의 목표는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었지만 21세기 의학은 건강한 사람을 더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하자는 것이목표다. 


대중 의학의 시대는 끝날 것이다. 인간 병사와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에 의하여 방치되고, 일부 엘리트 집단들은 쓸모없는 가난뱅이 대중에게 표준적인 건강조차 제공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차라리 표준을 능가하는 소수의 초인간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일본과 한국 같은 기술 선진국들에서는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 이전보다 훨씬 적어진 아이들의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며, 그들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인도, 브라질, 나이지리아 같은 거대한 개발도상국들이 일본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까? 이 나라들은 긴 기차처럼 1등 칸에 탄 엘리트 집단은 세계 최고의 선진국들과 맞먹는 수준의 의료혜택, 교육, 소득을 누리지만 3등 칸을 가득 메운 수억 명의 보통 시민들은 여전히 다양한 질병, 무지, 가난으로 고통받는다. 인도, 브라질, 나이지리아의 엘리트 집단들은 수억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투자할까, 아니면 몇백만 명의 부자들을 업그레이드 하는 데 투자할까? 군사적ㆍ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엘리트 집단이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20세기와 달리, 21세기의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비정하게도 쓸모없는 3등 칸을 떼어내고 1등 칸만으로 빠르게 달리는 것이다. 브라질이 일본과 경쟁하려면 수백만 명의 건강한 보통 노동자들보다 소수의 업그레이드된 초인간이 훨씬 더 필요할 것이다.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이미 1세기 전에 초인간을 창조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히틀러와 그 일당이 선택적 육종과 인종 청소를 통해 초인간을 창조하려 했던 반면, 21세기의 기술 인본주의는 유전공학, 나노기술,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의 도움으로 더 평화롭게 이 목표에 도달하려 한다. 이제 데이터교라는 신종 종교가 탄생하였다.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라고 데이터교는 역설한다.


사피엔스는 수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태어나 오늘날까지 몰라보게 진화했지만 그들의 알고리즘은 오늘날의 데이터 흐름을 다루는 데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인간의 데이터 처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이 창조한 인터넷이 곧 무한한 데이터 흐름을 창조할 것이고, 인간의 업그레이드된 알고리즘들도 그 인터넷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했을 때, 우리 인간은 말을 자동차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버렸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도 그들이 만든 알고리즘에게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데이터교는 인간의 경험을 데이터 패턴으로 여김으로써 권위와 의미의 원천을 파괴하고, 18세기 이래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력적인 종교혁명을 예고한다. 로크, 흄, 볼테르 시대에 인본주의자들은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데이터교가 인본주의자들에게 그들이 한 대로 똑같이 돌려줄 차례이다.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인간 상상력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18세기에 인본주의는 신 중심적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신을 밀어냈다. 21세기에 데이터교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


신 중심적 세계관 → 인간 중심적 세계관 →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 차례로 이전하면서 인류는 초창기 사피엔스처럼 별 볼일 없는 한 낱 미물로 전락하게 된다는 말이다. 단, 일부 엘리트만 제외하고.


여기까지 이야기 한 저자는 끝내 노아의 방주 같은 피신처도 제시해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서 안심시키는 듯 하지만 역시 서늘하고 섬뜩한 말이다.


인본주의 혁명도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듯이 데이터교 혁명도 몇십 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인본주의 혁명 이후에도 사람들이 계속 신을 믿었듯, 데이터교 혁명 이후에도 사람들이 그 자신을 계속 믿으려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그토록 믿었던 신의 신성한 목적은 끝내 알아낼 수 없었다.

우리가 지난날 동물들에게 한 일을 미래 언젠가는 그대로 돌려받을 것이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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