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에서 버스 타기
말이라고는 딱 두 마디만 제대로 할 줄 알았을 때. (안녕하세요와 고맙습니다) -그렇다고 근 5년이 되어가는 현재도 크게 발전하지도 않았지만 글자를 읽고 대략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거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거와는 삶의 편리성과 마음의 편안성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비교할 수가 없다. -
버스 정류장 근처 주유소에서 10회짜리 버스표를 샀다. 이 버스표를 사기 위해 먼저 버스회사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어디에서 버스표를 사는지를 조회를 했다. 외곽에 있는 우리 동네에는 버스표를 살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이제는 버스앱도 생겨서 표도 앱으로 구입할 수도 있게 되었지만 처음 내가 플란더스 지역에 살기 시작했을 때는 그런 앱이 없었다. sms로 버스표를 살 수 있기는 했지만 서비스 수수료도 받기에 저렴하지 않았고 버스를 자주 이용 안 하는 나한테는 10회권 버스표가 가장 저렴하게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버스기사님에게 직접 사면 요금이 두 배다. 다행히 우리 동네 파는 데가 버스정류장 근처 주유소. 무뚝뚝한 표정의 주유소 아저씨. "een Lijn bus ticket, alstublieft" (에인 라인부스 티켓트 아스튜블릿, 버스표 주세요.) 하는데 잘 못알아 듣는다. 아주 천천히 다시 말했다. 그리고 '부스'를 강조해 말했다. 그랬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버스표를 꺼내 주신다. 나이 40이 넘어 버스표 하나 사면서 긴장을 하고 그걸 사고 나서 감격까지 했다.
버스 정류장에 버스 번호 별 시간표가 붙어 있다. 버스 시간보다 10분 먼저 가 서 있는다. 그 버스를 놓치면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니까.
버스회사 인터넷 사이트에는 버스를 타는 법이 나온다.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처음 이 곳에서 버스를 타는 나에게는 도움이 되기까지 했다. 티켓을 사고 나서 버스 티켓을 기계에 어떻게 넣는지에 대한 설명을 영어 사이트로 되어 있는 곳에서 먼저 읽었다. 버스가 멀찌감치서 보이기 시작하면 먼저 손을 든다. 버스가 멈추고 앞문이 열린다. 그 안에 노란색의 기계가 있다. 그 기계 안에 표를 넣으면 날짜와 시간이 찍혀 나온다. 그런데 난 너무 긴장해서 인지 방향을 거꾸로 넣었다. 다시 튀어나오는 티켓을 기사 아저씨가 잡아서 제대로 돌려 티켓팅을 하고 버스표를 건네주며 웃는다. 아. 이 안도감이란.. 좌석에 앉고 나서 버스를 탄 것에 대해서 뿌듯해하는 내가 우습기도 했지만.
내가 가려는 목적지에 대해서 당연히 방송을 해줄 거라고 생각을 했다. '이번 정류장은..., 다음 정류장은...입니다.' 아니면 버스 안에 있는 전광표지판 안에 표시를 해주기라도 하던가. 놀랍게도 방송도 하지 않았고 전광판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용도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난 긴장을 했다. 구글맵을 여니 버스노선까지 표시해 주는 기능이 있기는 했지만 그거와 대조해 가며 바깥의 버스 표지판의 역명을 읽을만한 시력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뱃심조차 갖지 못했다. 대략 구글맵을 보며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쯤에서 일어났다. 내릴 정류장 전에 미리 벨을 눌러야 한다. 파란 버튼과 빨간 버튼이 있다. 빨간 버튼이야 비상용이라고 짐작이 되었고. 파란 버튼을 눌렀는데 내 손가락 힘이 부족해서 인지 제대로 눌러지지가 않았는지 옆에 서 있던 학생이 나를 한번 힐끔 보더니 파란 버튼을 다시 눌러준다. 그리하여 벨기에에서 첫 버스를 타고 내가 가려고 했던 헨트 시내에 혼자 제대로 잘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안도의 한숨을 한 번 더 쉬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처음으로 버스 타던 날의 그 긴장감이란.
플란더스 지역의 버스회사는 라인(Lijn) 이다. 일 년에 서너 번씩은 파업을 해서 아침에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 중에 투덜투덜 되던 아주머니가 기억이 난다. 30여분이 지났는 데도 버스가 오지 않아 뉴스를 검색해 보니 버스가 파업이다. 파업이라 버스 안 올 모양이라고 말해주었더니 지난번에는 직장까지 세 시간을 걸어서 갔다고 오늘은 그냥 출근하지 말아야겠다고 하며 반포기의 목소리로 말씀하시더니 집으로 돌아가신다. 버스기사의 처우가 여기도 그렇게 좋지는 않다. 정규직 공무원들은 매년 2~3퍼센트씩 자동으로 급여도 오르는데 버스기사들은 파업을 하고 해야 겨우 1퍼센트 올리기도 힘들다고 한다. 거기다 종점에서 종점까지 길이 막히기라도 하면 세 시간도 더 걸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동안 물론 화장실을 갈 수 도 없는 처지다. 이 곳 버스기사들을 보면 가끔씩 감탄을 하게 되는데 바닥은 중세시대에서 나온듯한 벽돌이 그대로 깔려있는 좁은 골목길을 2량이 연결되어 긴 버스가 잘 돌아서 운전해 간다. 그리고 수시로 튀어나오는 자전거 탄 사람들은 어쩌란 말이냐. 거기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은...
버스기사는 상시 모집이다. 지원을 해서 붙으면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같이 어학원에 다니던 17살에 결혼을 해 어른인 큰 아들은 러시아에 그대로 살고 이제 막 한 돌이 지난 아이까지 다섯 아이의 엄마였던 이제는 벨기에인인 지인은 그 당시 버스기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녀가 버스기사가 되기를 원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자기를 감시할 상관과 같이 근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답답한 사무실 안은 딱 질색이고 거기다 운전을 하는 게 재미있기에 버스 기사는 자기에게 이상적인 직업인 것 같단다. 면접을 보고 언어와 운전교육과정을 근 6개월 정도 받고 이제 40대 초반의 그녀는 버스기사가 되었다.
몇 년 전 12월 31일 헨트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탔다. 헨트로 가는 마지막 버스와 돌아오는 마지막 버스는 공짜고 기사들은 고깔모자를 쓰고 축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가끔 티켓 체크기가 고장이 나면 기사 아저씨는 말한다. "그냥 타세요!" 그리고 씨익 잘 웃어주는 친절한 기사들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는데..
지금 생각하는 라인버스(Lijn bus)의 큰 장점은 저상버스다. 타는 사람은 앞문으로 타고 내릴 때는 뒷문으로 내려야 하지만 유모차나 휄체어를 탄 사람들은 양쪽 문으로 열리는 뒷문으로 탈 수 있다. 차의 뒷문 바깥쪽의 벨을 누르면 뒷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차가 멈추면 차체가 약간 내려 앉는다. 뒷문 쪽에 유모차나 휠체어를 고정 시킬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한 번은 유모차를 고정시키지도 않고 잡고 있지도 않은 채 수다를 떠는 젊은 커플을 보고 좀 불안했었는데 운전기사님이 소리를 쳐서 주의를 주었다. 젊은 커플은 짜증을 내면서 유모차를 잡고 있다가 차에서 내리고 나서는 팔을 들어 기사에게 욕을 하기는 했지만.
벨기에에서 마지막으로 버스를 탄 날. 버스가 중간에 급행으로 바뀌었다. 물론 안내 방송을 안 해 주어 난 그걸 몰랐다. 내가 내릴 정류장에 내려 줄줄 알았는데 버스가 그냥 가버린다. 기사님에게 내려달라고 했더니 이 버스 급행이라고 안된단다. 사정사정을 했지만 고지식한 기사님 끝내 20여분 중간 기착지 없이 쌩하고 달려 생판 모르는 동네에서 내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