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沒入)

예술, 무슨 물건인가?-26

by 에코




몰입(沒入).



몰입(沒入)은

우리 삶과 매우 밀접하다.



그림을 그리든,

사업을 하든, 운동을 하든,

놀든, 쉬든,



몰입은 삶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근간이다.



몰입이 없으면

당면한 일을 온전히 해내기

어렵다.



몰입은

특별한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의 순간 몰입하며 살아간다.



설령 그런 자각이 없더라도,

그림을 그리거나, 일을 하거나, 걷거나,

다투거나, 혹은

가만히 있을 때조차 그렇다.



우리는 일상을

몰입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할 뿐이다.



몰입은 물처럼

걸림 없이 흐르는 상태다.

억지로 하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몰입해야지' 하는 마음이나,

'놓아야지' 하는 마음조차



몰입을 방해할 뿐이다.



심지어

'가만히 있자'는 생각도

또 다른 분별일 뿐,



몰입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그저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몰입은 찾아온다.



결코 손댈 수 없는,

참으로 신묘한 경지(境地)다.






진정한 몰입은



'몰입하려는 나'도 그것을

'보는 (見我)'도 사라진다



모르는 줄도 모르는

주관과 객관의 경계가 무너진 상태다.



'보는 나'도 볼 대상도 없으며,

다만 작용(作用)만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무아지경일 때,

그림이 물이흐르듯 하기에

시간조차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몰입이 아무리

좋다 해도 끊임없이 이어진다면

그것도 문제다.



과도한 몰입은 신체적 정신적

폐해를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몰입을

방해하는 분별은, 오히려 현재로

돌아오라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러니 몰입이 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몰입과 분별은

서로 상대적이라,



서로 의지하고

얽히며 설켜 교차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몰입이 분별로 깨질 때

갈등과 고통이 일어나지만

그 또한 에너지의 순환이다.



설령 일상 중에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을 자각하고 느끼는

순간은 잠시 잠깐이다.



왜냐하면 금방

다른 일이 생겨 고통을

잊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삶의 수많은 조건들이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중에 단지

한 두 가지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통이나 절망으로 채우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고통에 대한

몰입이 지나치게 되면 좌절과 함께

죽음의 공포까지 올라와



삶에 대한 의욕이

상실될 수 있으므로,



즉시 '보는 나(見我)'를 챙겨

고통의 에너지가 사라질 때까지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보는 나'를

통상 관조, 주시, 관찰자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들은

다분히 의식적인 자아이다.

그래서 몰입에 있어

방해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보는 나'는

이들조차 저절로 알아차리는

자성(自性)을 말한다.



결국 '보는 자'와

'보는 것을 보는 자'의

경계가 사라질 때,



비로소

관법(觀法)의 궁극이요,

진정한 몰입이랄 수 있다.



여하튼

자신이 마땅히 해야 될 일에

자주 몰입되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는 것이야말로



삶의 질을 높이며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 수가 없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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