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이법(無法而法)

예술, 무슨 물건인가?-25

by 에코




"여기 액자에 적힌

'무법이법(無法而法)'이

무슨 뜻이죠?"




"수묵화나 서예에서

자주 하던 말인데,



'무법(無法}을

법(法)으로 삼는다'는

뜻이지."




"무법을

법으로 삼는다고요?

무법이라면 법이 없다는

말인데,



설마 화법이나 필법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하라는

뜻은 아니겠죠?"




"그렇게 단순한 얘기가 아니야.

우리가 말하는 화법이나 필법은



물론 작품을 하는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거기에

매이거나 안주하게 되면,



오히려 경직되고

진부해져서 생동감이

떨어지게 되니



생각의 틀을 깨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해."




"아, 네. 틀을 깬다는 건

새로운 화법이나 필법의



확장이자 곧 도약이

되는 거겠네요."




"그렇지. 하지만

몸에 밴 습관을 벗어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



그래서 스스로

깊이 성찰하고



'이것만이 최선인가?'를

사유하면서



왜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가를

자각해야 하는 거야.



그 이유를

모른다면 결코 벗어날 수

없거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직관적으로

알고 있어.



단지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

라는



욕망이 그것을

붙잡고 있을 뿐이지.



그 한 생각만 놓는다면

틀은 저절로 깨지게 돼."






동양의 회화미학은

서양보다 훨씬 이르고

그 깊이도 매우 방대하다.



중국미술사에는

회화미학에 관한 기록들이

많아,



36권 총서로

정리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다.



명말청초의

선승이자 화가였던



석도(石濤}의

'고과화상화어록'에 나오는

16자 구절이다.



至人無法 非無法也.

無法以法 乃爲至法

(지인무법 비무법야.

무법이법 내위지법)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법이 없다'.



그러나 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법 없음'을 법으로 삼기에,



곧 지극한 법이 된다'라는

말로 새겨진다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할 말을 잊었다.



이러한 경지는

단지 그림을 많이

그린다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이후, 이 말은 내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아



문득문득

꿈틀대며 나를 자극하고

경책 하곤 했다.






예전 동양화 교육은

예술가의 예술정신이나 태도

보다는



필묵의 기법과 재료의

사용법에 치중돼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예술이란 기술이나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통찰과 자각'



을 통한 '도약(跳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타자의 시선'

놓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단번에

'무법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습관화된

분별심을 내려놓고,



허허벌판 같은

어둠의 광야,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곳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실로 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부처께서 이르길



'의지할 수 없는 곳에
의지하라.'



했듯이,



'무법(無法)'은 줄곧

예술활동의 화두(話頭)가

되었다.



석도가 말한

'지인(至人)'이란,



바로 '한 생각'을

내려놓은 자요,



아무 데도

'머물 수 없는 자리(無住處)'를

자각한 자인 것이다.



의지할 법이 없으니

무법(無法)이 되고,



무법을 법으로 삼으니

유법(有法)이 되며,



유법과 무법이

아님이 스스로 드러나니,



정녕,

'기막힌 도리(道理)'가

아닐 수 없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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