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무슨 물건인가?-05
"조나단 메세라는
작가의 작품을 봤는데요,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냥 기분
나는 대로 한 것 같았는데...
거기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교가
없었어요."
"오. 그래?"
"마구 헤집어
놓은 것 같았지만,
그 안에는 예측불허의
자유로움이 있어
거대한
뭔가를 마주한 듯해서,
혼이 빠져나가듯 멍해져
할 말을 잊었습니다.
정말이지,
그동안 기법을 연마하려고
들인 지난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지더군요."
"원래 감동이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어서
배워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지.
그림에서 감동을
주기 위해 반드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야.
감동을 주기
위해 기교를 배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예술과 종교는
아주 유사점이 있어.
바로
'순수'를 근본으로
한다는 거야.
순수하거나
진실할 수 있다면, 기법이나 기술은
사실 사족에 불과한 거지.
교회나 절에 오래
다닌다고 해서 더 영적이
되는 게 아니듯,
그림을 오래
그렸다고 더 순수해지는
것도 아니지 않겠나?"
"그렇다면,
예술의 본질은 순수성에
있다는 거네요?"
"당연하지.
만약 예술에 꼭 필요한
기술이 있다면,
그것은 잃어버린 순수를
회복하는걸 거야.
그런데 순수는
기술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것은 회개나 참회처럼,
숨겨 놓았던 생각이나
감정을 진실하게
고백할 때 저절로
발현되는 거지."
"사실 그의
작품을 보고 나서,
그림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봤네.
사실 기술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까,
더구나 '그림의
순수성을 찾기 위한
방법을 따로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맞겠지.
그림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데있어서
기술이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감동이란 행위자의
진심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를 잘 해내기 위해,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믿고 있잖아요.
그래서 계속 해결방법을
찾느라 골몰하는 거죠."
"물론 무엇이든 간에
해결방법을 찾긴 해야지.
하지만 예술이나 종교만큼은
기술이나 방법으로
순수를 회복하기 어려워.
기술이나 방법으로
순수에 도달하려는 건,
마치 모래로 떡을 빚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효도를 잘하려면
'효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효심만 있으면
어떤 행동도 곧 효도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야.
이렇듯 그림도
방법이나 기술을 놓는 즉시
순수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
"하지만
'그림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도
결국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아직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는구나.
자네는 슬픔을
배워야만 슬퍼할 수 있나?
슬픔은 우리 존재와
늘 함께 있어
슬픈 일을 만나면
저절로 슬퍼지는 것이지.
이걸
깨닫기만 한다면, 배울
필요는 없는 거지."
"하지만
그림은 다르지 않습니까?
적어도 사실적인
표현 방법 정도는 배워야
하지 않나요?"
"그런 시대도 있었지.
사실적 표현이 요구되던 시대라면,
표현의 기술은 필수였어.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완전히 해체된
현대미술의 시대
아닌가 말이야?"
"그렇긴 하죠."
"사실적인 표현방법도
필요하긴 하나,
설령 배우지 않아
서툴다 하더라도, 순수한 마음을
드러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동은
충분히 전해진다네.
즐거움에 형식이
따로 없듯 어떻게든 즐거움을
드러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완전한 거야. 예술도 마찬가지 지.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그 그림들은 늘 새롭고,
또 놀라울 수밖에 없을 걸세."
"네, 공감이 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을 한다고?"
"네.."
"노력을 하려고
애쓰지 말게. 이럴까 저럴까
조바심도 내지 말고,
다만 자네의
생각이나 감정들을 솔직하게
끄집어내기만 해.
그게 시작이야.
그렇게 잘 꺼내놓게 되면
종내에는
'그림'이란 것이 무엇인가?
하는 뜻도 알게 될 거야.
그림은 그리워하다에서
왔다 하는데, 무엇을
그리워하는 걸까?"
"글쎄요.
무엇을 그리워하기에
그림이라고 했을까요??"
"이미 보고서도
본 줄 모르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