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무슨 물건인가?-04
아카데믹한 미술 교육은
대체적으로
주제를 먼저 정하고
콘셉트를 구상한 후,
거기에 맞는
소재와 재료를 선택하여
그리거나
만들어 나가는 것을
올바른 것으로 보고 있다.
개념미술이
등장한 이후,
이러한 풍토는 더욱
심화된 듯하다.
그래서 마땅한
주제나 콘셉트가
떠오르지 않는
학생들은
고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반드시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운 다음
이루어져야만 하는 걸까?
물론 철저한
목표와 계획이 선행되어야
하는 일들도 있다.
예를 들어
건축이나 토목공사
같은 경우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계획을 세우더라도
결과가 다르거나
심지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할
경우도 있다.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할 때,
그저 되어지는
대로 해 본 적도 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추상화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무엇인가
이미지나 언어로 떠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생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생각이 떠오른 것만
'생각(有念有想)'이라
여기지만,
떠오르지 않는
'생각(無念無想)'도
생각이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무의식 또한
정교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무의식의 언어는
오히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언어보다
더 정확하고 정교한
것일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림은 반드시 먼저
주제를 정하고
계획을 세워야만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미술계도
외국의 영향을 받아
그런지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을
할 수 있어야
유능한 작가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작가가 답변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내면을
읽어내지 못하면
작가도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작가들이
자신의 내면을 다 알 수
있겠는가?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학생이나 작가나
자신이 하는 작업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우리는
작품에 대한 주제나
콘셉트가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을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면서도
우왕좌왕하곤 한다.
이런 사람에게
작업에 대해 질문하면,
자신 없는 말을
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는 것을 알고,
모른다는 것을 알면,
다 아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불완전한 우리들이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있겠으며,
말할 수 있고,
행할 수 있겠는가?
자연도 스스로
자연인 줄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안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사실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더라도,
자신의 존재가
이끌어가는 대로 맡기고
작업을 하는 화가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삶은
매우 심심해질지도
모른다.
기대감으로
가슴 뛰는 설렘도 사라질지
모른다.
그래서 성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여기서, 나로서
살아가라."
마음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방황하지 말고,
"즉각적인 나"로
살아가라고.
나아가
'모르는 것과 마주하라'
는
그들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우리들은
늘 아는 것이나
두렵지 않은 것과
만나려 하기에,
구태의연한 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자신의
고정관념 안에서만
안주하려 하기에,
자신의 틀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것과
마주할 때,
의외의 것들이
튀어나와
틀 밖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이때 펼쳐지는 것들은
무계획적이고 우연적인
것들이다.
예술의
살아있는 생명과 불꽃은
'사실 여기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무엇을 그려야 할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거나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알 수는 없지만
이게 뭐지? 하는
의문을 갖고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아, 내가 이런 뜻으로
이 그림을 그렸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
마음은 밝아져
다시는 '모른다'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알 수 없음을
수용하는 여유로움이
생길 것이다.
그린 이유를 알게 되면,
그것에 합당한
주제와 명제를
붙이면 될 것이고,
그래도 모르면
'무주제'에
명제는 '무제'로 하면
될 것이다.
작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뚜렷한 '주체의식'이다.
주체의식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할 때 생겨난다.
자신의 마음과 행위가
지금 어떠한지를
잠시 잠깐 돌아보며
깨어있을 수 있다면,
웬만한 것들은
바로 잡을 수 있다.
일상을 이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하이데거는
'본래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