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과 이상(異常); 글쓰기 수업 3

< 풀소유 베란다 >

by 김기원

즐겨봤던 프로그램에서 발코니와 베란다의 차이를 설명했었다. 지붕이 있느냐 없느냐, 벽에서 튀어나왔느냐 아니냐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고 했다. 들을 때는 분명히 알겠다가도 돌아서면 잊는다. 그래서 발코니일지도 모를 베란다가, 베란다일지 모를 발코니가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있다. 부추든 정구지든 솔이든 졸이든 어떻게 부르든지 먹어서 맛있으면 감사한 일이고, 베란다든 발코니든 만족할 공간이 있어서 흡족하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통창에 가득한 회화나무에 이끌려 베란다로 나아갔다. 바람에 출렁거리는 나뭇잎이, 넘실넘실 대는 거대한 물결 같았다. 바닷속에는 지구만한 고래가 있고 고래가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파도가 인다는 동화 속에 들어온 듯했다. 초록 물결을 타고 어디든 먼 곳으로 갈 수 있으리라.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베란다인데 폭마저 넓었다. 어른이 두 팔을 다 벌려도 될 정도로 넓었다. 홀린 듯 이사했다.

베란다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방문객을 마중하는 곳이다. 새벽 배송 차들의 분주한 엔진 소리, 성인가요와 함께 하는 어르신들의 산책 소리, 이른 아침부터 존재감이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가 찾아온다. 조금 뒤에는 등교 시간을 맞추려는 아이들의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밀려온다. 재잘거리는 소리가 함께 오는 초등학생 발소리, 발소리만 묵묵하다면 중학생들이다. 이들은 간발의 시간차를 두고 같은 길에서 온다. 빨려 들듯 아이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휑한 거리엔 출근인지 나들인지 모를 어른들의 엔진음이 들어찬다. 이 소리마저 사라지고 나면 거리도 한숨 돌리고, 방문객을 맞느라 분주했던 베란다도 고즈넉해진다.

그때야 뒤늦게 알아차리는 방문객들이 있다. 새 폴더를 만들 때나 있는 줄 알았던 직박구리가, 새 폴더가 없는 회화나무에 찾아온다. 구단만 줄곧 외워대는 산비둘기가 오면 베란다 가득 떨어진 숫자 9를 한가득 쓸어 담아야 한다. 비둘기는 무엇 때문인지 산비둘기만큼 자주 오진 않는다. 반가운 손님을 알린다는 까치의 방문은 드물어서, 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소식이다. 부끄럼이 많은지 까마귀는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고, 다녀갔다는 소리만 베란다에 남았다. 통성명하지 못한 작은 새들도 가끔 찾아온다. 이름은 몰라도 베란다가 맞이한 은근한 방문자들이다.

사실 방문객을 맞이하는 베란다의 주민들은 따로 있다. 종일 볕이 들고 물도 가까우니, 화분에 담긴 풀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베란다를 온전히 누리는 주인이다. 가진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 소유임을 일깨운다. 몇 차례 이사를 하면서 몇몇은 흙으로 돌아갔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풀들.

처음으로 돈을 주고 샀던 꽃과 향이 짙은 브룬펠시아. 먼 길 떠난 분과 인연이 있던 무늬사철. 맡겨놓은 주인은 유학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아직도 남의 집에 유학 중인 철쭉과 인삼벤자민. 열매를 맺지 않아 레몬인지 귤인지 탱자인지 몇 년째 알 수 없어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그것. 나무지만 생명력만큼은 거친 들판의 풀들만큼이나 강하다.

야생의 풀처럼 존재하는 것들도 있다. 괴물처럼 성장할 줄 알았으면 들이지 않았을 몬스테라. 차마 반려라 부를 수는 없는 고양이 간식 캣그라스. 산책 중에 화원에서 데려온 나한송. 대형마트 채소 판매대 옆에 놓인 것을 마음의 양식으로 들여온 여인초. 중년의 뱃살 늘어나는 속도만큼 빠르게 증식했던 장미허브. 오로지 눈에 띄지 않는 것만으로 근근이 생존하는 나도흰꽃샤프란. 제각각의 모양대로 존재하는 풀들이 베란다에 가득하다. 다 언급할 수 없지만 그들이 베란다의 주인이다. 우리 집 베란다는 풀들로 가득한 풀소유 베란다다.

풀떼기들이 소유한 풀소유(풀 have) 베란다라서 살림은 풀소유(poor 소유)하고, 베란다만 넓은 옛날 아파트가 좋으니 생각은 어리석을지(fool소유) 몰라도, 풀떼기가 가득(Full소유)한 베란다 때문에 마음만은 풀소유(pool소유)처럼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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