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지는 나, 그 허상에 대하여
이 세상 모든 기념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모든 이들을 위한 기념일인 새해, 어린이날,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그리고 애인과 나 단 둘만을 위한 낯 간지러운 각종 기념일까지... 기념일은 지리한 일상에서의 합법적인 탈출구이며, 답답한 삶 속에 산소마스크를 달아 준다.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했더라도 죄책감을 느꼈을법한 일탈 행위가 기념일이라는 구실 좋은 미명 하에 로맨틱한 이벤트로 정정된다.
기념일은 특별한 날이니까 괜찮다. 평소에는 사지 않았을 것들에 돈을 낭비하며 사치하더라도, 평소에는 죄책감을 느꼈을 고칼로리의 음식을 몸에 밀어 넣었더라도, 밤늦게까지 나가 노느라 늦게 일어났더라도 스스로를 쉽게 용서할 수 있다. 게으르며 자기 통제력 부족한 내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자유와 쉼을 부여하는, 로맨틱하며 즐길 줄 아는 내가 된 것이라며 합리화한다.
그중에서도 크리스마스는 가장 애정하는 기념일이다. 집 안에 놓여있던 자그마한 트리, 엄마가 만들어주신 과일 샐러드와 생크림 케이크를 먹으며 가족들과 옹기종기 사랑하던 밤, 교회에서 관람한 크리스마스 연극,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던 그 기대감. 어렸을 때의 따수운 경험을 아직도 몸이 기억하는지 여전히 크리스마스는 너무나도 특별하다. 추운 날씨와 대비되어 더욱 따스하게 느껴지는 훈훈한 분위기, 거리에 울려 퍼지는 달콤한 캐럴, 거리의 연인들과 가족들이 풍기는 사랑과 행복의 기운. 올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무리한다는 안도감과 소속감. 이 모든 요소들이 잘게 섞이고 어우러져 은혜롭고 풍성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며칠 전부터는 앙증맞은 에어팟 두 짝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기 시작한다는 건, 크리스마스에 대한 조금 긴 고대의 시발점이 찍혔음을 의미한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과 황홀감이 가슴속에서부터 스멀스멀 풍기기 시작한다. 올 크리스마스엔 어디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애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재작년의 크리스마스 사건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sns가 삼켜버렸던 나의 크리스마스.
유난히 추웠던 재작년의 크리스마스. 서울의 모 백화점 내부에 백화점 팝업 치고는 꽤나 큰 규모의 크리스마스 마을이 조성되었다. 앙증맞은 곰인형들이 대롱대롱 달려있는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 곰돌이가 가득 쌓여있는 오두막...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마을은 금세 sns를 통해 유명해졌다. 친구들의 sns에는 하나 둘, 크리스마스 마을에서 찍은 인증 사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려 있는 곰돌이 장식을 살포시 손에 얹고 찍은 인증사진, 대형 곰돌이를 품에 꼭 안은 채 찍은 인증사진... 당시의 나는 sns에 푹 빠져있었고 남들에게 내 모습이 행복의 절정으로 비치어지길 바랐다. 결국 친구들의 sns 인증샷을 보며 크리스마스 마을에 대한 환상만 커지던 나는 애인을 졸라 무려 크리스마스 당일 날 크리스마스 마을에 방문하기로 다짐한다. 서울의 인파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지 인지하고 있었으나, 오픈런하면 괜찮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미리 언급하자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백화점에 오픈런하는 사람들에 대해 간과했던, 나의 오만이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나와 애인은 백화점 오픈 시간 전에 백화점 앞에 도착했다. 꽤나 이른 시간에 당도했음에도 백화점 앞에는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세상에 너 같은 사람들이 많나 보다.'
줄의 끄트머리에 서, 줄의 일부가 된 우리의 상황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애인이 살짝 핀잔을 주었다. 백화점 오픈 시간에 백화점 문이 열리자, 줄 서있던 인파 속 사람들은 백화점으로 정신없이 돌진했다. 넓디넓은 백화점에서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렸다. 마치 하나의 과녁을 향해 당겨진 화살들 같았다. 그 과녁은 단연코 꼭대기층의 크리스마스 마을. 모두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모습은 조금은 기이했고 비정상적이었다. 그럼에도 오픈 전부터 줄 선 보람은 있어야 하기에 나와 애인도 그들의 일부가 된 채 꼭대기 층으로 달렸다.
입장까지 30분 정도 웨이팅을 하고, 겨우 크리스마스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30분 정도의 웨이팅까지는 뭐 그래, 견딜만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크리스마스 마을은 몇 개의 오두막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오두막에 들어가려면 다시 줄을 서야 했다. 오두막 앞으로는 또다시 지긋지긋한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백화점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크리스마스 마을 입장을 위해 또 기다리며, 크리스마스의 설렘마저 바람 빠진 풍선마냥 쪼그라들며 진이 빠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여지껏 기다린 시간과 수고가 아까워 또다시 줄을 섰다.
1시간, 2시간, 3시간이 지났다. 줄은 꽤나 괜찮은 속도로 줄어드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시점에서는 그대로 멈춘 것만 같았고, 마치 농락당하는 듯했다. 나와 애인의 기다림의 매몰 비용은 리니얼 하게 높아져만 갔다. 서울까지 올라온 시간과 비용, 매서운 바람에도 옷깃을 부여잡으며 백화점 입장을 위해 줄을 선 시간과 노력, 크리스마스 마을 입장을 위해 버텨 온 시간, 그리고 줄을 서며 지속적으로 잡아먹고 있는 소중한 크리스마스의 시간들...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 줄에서 벗어나자, 마음 한 구석에서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업보처럼 쌓여만 가는 매몰 비용은 우리의 발목을 붙잡았다.
4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와 애인의 입장 순서가 되었다. 이미 기다림에 지쳐 얼굴에 웃음기가 걷힌 지는 오래였다. 오두막에 들어가서 느껴지는 감정의 종류는 환희, 감격 같은 격정적이면서도 활기찬 것들이 아니었다. 기다린 시간과 기대감에 한참 못 미치는 오두막에 대한 짜증, 허무함 같은 부정적인 종류의 감정의 부유물들이 지저분하게 뒤섞여서 몰려왔다. 그러나 여지껏 기다렸고 인증샷은 남겨야 했기에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카메라의 셔터음이 울리는 순간에만 억지 미소를 지었다. 마치 누구보다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만끽하고 있으며, 크리스마스와 가장 어울리는 장소에서 크리스마스의 황홀경을 누구보다 즐기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누구도 시키지 않은 연기를 하며, 그렇게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크리스마스 마을을 빠져나오자마자 진이 빠진 나와 애인은 백화점을 허겁지겁 나와버렸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크리스마스 마을은 우아하게 즐긴 후, 백화점을 거닐며 팝업 구경도 하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려 했지만, 이미 어마어마한 인파들에 정신이 빠져나온 지 오래였다. 입을 절반쯤 벌인 채 백화점 밖으로 나와 시간을 확인해 보니 2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식당은 이미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하핫,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지. 미안."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나 때문에 귀한 성탄절 공휴일의 절반을 줄 서는 데 보낸 애인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조금은 머쓱한 변명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 표현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울에 올라와 내내 줄 서느라 우리는 허기졌다. 브레이크 타임이 아닌 식당을 검색하고 또 그 식당까지 이동할 에너지마저 잔존하지 않았다. 결국 가까이 있는 맥도날드에 급한 대로 들어갔다. 그러나 맥도날드 줄도 어마어마했고, 결국 우리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햄버거 세트 두 개를 얻어냈고, 허겁지겁 햄버거 세트를 해치웠다.
그다음엔 그저 커피 좀 마시며 피로를 풀다가, 이곳저곳 거리 구경을 하다가 그렇게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재작년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의 파편을 조금 주워 꺼내보자면, 아침 바람을 맞으며 길거리에서 애인과 덜덜 떨었던 것, 잘은 선의 형태로 얼굴과 뒤통수와 몸을 스치던 바람 속에서 유일하게 따뜻했던 건 애인의 손이었고 그 희미한 온기에 온몸을 의지했다는 것, 줄이 줄어들어드는 것 같으면서도 그대로인 것 같아 마치 인간 신기루를 경험하는 것 같았다는 것, 다리가 저려오고 배가 고팠다는 것, 터미널 안의 카페에 앉아 집에 돌아가는 버스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그 사이에 행복한 기억 조각들도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예를 들자면, 주리고 텅 빈 배를 달래듯 햄버거 첫 입을 베어 물었을 때 느꼈던 고기의 그 육질, 카페에서 마신 핫초코의 달콤함, 길었던 내 앞의 오두막 줄이 사라지고 우리의 차례가 되었을 때 '이제 됐다'는 안도감.
크리스마스 마을로 출발하는 우리의 온도는 사뭇 달랐다. 크리스마스 마을을 보러 가자는 나의 말에 애인의 반응은 애초에 마지못해 수락하는 듯했고, 기대에 가득 찬 나와는 달리 밍숭맹숭했다. 그러나 차가운 물질과 따뜻한 물질이 서로 맞닿아있다 보면 두 물질의 온도는 점점 서로와 닮아가고 결국에 온도가 같아지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나와 애인의 표정과 생각은 마치 데칼코마니 같았으리라.
"으, 크리스마스에 다신 이런 곳 안 간다."
"그니까, 크리스마스를 줄 서느라 다 보내버렸네. 아쉬워."
종일을 함께 배회하다 결국 비슷해진 온도와 감정을 공유하며 애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핑계를 대보자면 sns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다. 모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마을은 sns 홍보를 통해 유명해졌고, 사람들의 인증사진과 일명 인스타 감성샷으로 인해 더 널리 퍼지게 되었으며, 결국 내 지인들의 sns 피드는 내 sns에 등장했고, 사진 속의 크리스마스 마을에 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았다. 조금 더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나도 내 sns에 크리스마스 마을 인증사진을 업로드하고 싶었다. 결국 남들을 따라 하고자 하는 유치한 욕망은 나와 애인의 크리스마스를 춥고 기다림으로 가득한 시간으로 채워버렸다.
그날 밤, 나의 sns에도 크리스마스 마을에서 찍은 인증사진이 올라왔다. 행복해 보이고, 만족감으로 가득 찬 기세 등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 속의 나는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니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 견뎠던 추위, 굶주림, 답답함 같은 어두운 감정은 사진 속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사진을 본인들의 sns에서 발견한 나의 지인들은, 나를 마치 크리스마스다운 크리스마스를 보낸 사람으로 생각할 게 뻔했다. 길고 긴 기다림과 지침 끝이 사진 하나 때문에 크리스마스 아침 일찍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 그 고생을 했지. 사진을 올리고 나서 늘어나는 좋아요 수를 관망하며 왠지 모를 허탈감이 몰려왔다.
크리스마스 마을은 분명 아름다웠고, 제작자들의 수고와 고심이 드러날 정도로 감각적이면서 세심했다. 크리스마스에 애인과 나란히 줄을 서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걸어갈 미래에 대해 계획했던 시간들마저 추억이 되었다. 원래 인간은 고생을 지나가 미래로 나아가게 되면, 고생한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너그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도 지인들의 sns의 인증사진을 보고, 대세에 합류하기 위해 크리스마스를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낸 스스로에 대해서는 합리화가 되지 않는다. 그 이후, sns 사진만을 위한 행위는 확연히 줄어들게 되었다. 사진에 담아내기엔 너무나도 소중하고 애틋한, 사진으로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뇌와 몸의 세포 곳곳에서 기억할만한 행위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아직도 나의 sns를 넘겨보면, 작위적인 행복을 연기하는 듯한 사진들이 넘쳐난다.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과시 욕구와 남들이 하는 행위를 모방하고, 그들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소속감이 이러한 sns에 대한 열망을 낳았으리라. 그러나 그날 이후, 나의 sns에 대한 집착은 한 풀 꺾였다. 인증 사진만을 위해 줄을 서며 시간을 허비하고, 인테리어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인증사진을 찍으러 카페에 가는 일이 사라졌다. 보여지는 나보다는, 스스로가 느끼고 경험하는 나, 내가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