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중고 자전거 거래 후기
당근마켓에서 중고 로드바이크를 샀다. 원래 있던 로드바이크는 명절 때 역 앞에 묶어놓았다가 잼민이로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도난 당했다. 이제 갓 1년 쯤 타서 아직 입문하는 느낌이라 100-200만원을 주고 새로운 자전거를 사는 게 부담스러웠다. ‘희망이’라는 당근 유저가 중고지만 한두번만 탄 자전거를 삼분의 이 가격에 내놓았길래 덥석 물었다. 광주집 근처에 있는 곳에서 거래를 했다. 집 앞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온 ‘희망이’는 비니를 쓴 50대 아저씨였다. 중고 자전거는 프레임에 스크래치가 있을 수 있고, 기어 변속이나 체인 등에 기능적 하자가 있을 수 있어 이리저리 꼼꼼하게 살폈다. 직접 타서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대화의 물꼬를 텄다. 채팅할 때도, ‘제가 아파서 한두번밖에 못탔어요. 거의 새거나 다름없어오’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암을 앓고 계셨다. ‘그 왜, 작가 허지웅이 걸린 병 있잖아요, 혈액암’. 비니 뒤에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을 잃은 사연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살피는 건 뒷전이요, 한참 대화를 나눴다. 싸이클링을 좋아하는 형님과 함께 타려고 마음 굳게 먹고 지른 첫 로드바이크였다고 했다. 형님과 한강 변에서 타니 참 즐거웠는데 한두번 탔을 때 갑자기 암이 찾아왔다고 했다. 그 후 2년 동안 한 번도 타지 못하고 자전거는 집 현관만 지켰다고 했다.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집을 나와 학원에 가고 태권도에 가는 아저씨의 따님분과도 마주쳤다. 떠나는 딸들에게 조용히 ‘안전하게 잘 다녀와’ 말하는 아저씨의 말들이 다정하게 들렸다.
‘다음주에도 항암치료가 있어요, 한동안은 자전거를 못 탈 듯하니 제게 있는 자전거 장비는 다 드릴게요.’ 거치대, 펌프, 타이어 등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줄 수 있는 게 이게 다라서 아쉽다고 했다. 자전거를 서울로 가져가야해서 짐들을 차에 실어야 했다. 혼자 끙끙대고 있으니 아저씨가 도와주시겠다며 나서셨다. 아저씨 건강이 염려돼서 정중히 사양했다. 몇번 서로 도와주니 마니 실랑이하다가 결국 차에 싣는 것까지 도움을 받았다. 차를 타고 집에 왔는데, 그 사이 폰에 ‘희망이님이 거래 후기를 남겼어요’ 알람이 떠있었다. ‘좋은 분께 넘겨드려 저도 기분이 좋네요’. 건강해지시면 한강에 같이 자전거 타러 가자고 답변을 보냈다. 자전거는 메리다의 스컬트라라는 모델이었다. 무광 검정 색상에 날렵하게 생긴 놈이었다. 빠르고 거칠어보이는 생김새에 ‘이리’라고 이름을 붙여줄까 고민했다. 그러다 희망이라는 의미 반, 날라다니자는 의미 반 해서 ‘홒(hop)’이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어제 홒을 타고 서빙고 역까지 왕복 두시간 정도 라이딩을 했다. 2년동안 홀대받던 녀석을 여기저기 손보고 정비해야 했다. 거래한지 일주일 만에 타는 데 성공한 거라 흐린 날씨에도 마냥 즐거웠다. 아저씨 말대로 참 잘 나갔고, 새거나 다름 없었다. 중간중간 휴식할 때 자전거를 내려놓으면서 흠집이라도 날까봐 애지중지 했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결국 앞다리에 조그만 스크래치가 남았다. 마음이 헛헛하고 아팠다. 본래 물건을 험하게 쓰다 새거를 사서 쓰는 편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많이 갔다. 앞으로도 많은 여행을 함께 할텐데, 벌써 어느정도 추억이 쌓여서 그런가보다.
2022년 3월 2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