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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 모성애

모성애와 엄마 상처에 대한 이야기

by 미미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를 역주행으로 보기 시작했다.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귀향(volver)’ 포스터에는 주인공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즈)의 눈빛이 강렬하다. 역시 원색 특히 빨강을 쓰는데 거침없는 알모도바르. 이야기는 극한 스토리 서스펜스 반전 일명 막장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이 감독의 여러 영화를 보다 보면 비슷한 구성과 극적인 반전 등 요소는 비슷해도 ‘귀향’이라는 걸작을 따라올 작품은 몇 되지 않는다.


스토리는 주인공 라이문다를 중심으로 여자들의 서사를 그리고 있다. 라이문다는 스페인어로 현명한 보호자라는 뜻이다. 우연의 일치일리가 없는...라이문다는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 파코와 십 대 딸을 둔 엄마이자 아내로 마을을 떠나 마드리드에 살고 있다. 이 영화 속에서 남편이 집에서 하는 행동이라고는 정해져 있는데, 맥주캔 따며 티브이 보기와 성적 욕구 풀기. 딱 두 가지이다.


가장의 역할을 하며 고단하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라이문다를 통해 파코는 성적 욕구를 해소해보려고 하지만 라이문다가 거부하자, 그는 라이문다 등 뒤에서 자위를 한다. 그리고 라이문다는 등 돌린 채로 이 모든 행위를 음성지원으로 들으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카메라가 남편의 시선을 따라갈 때 영화를 보는 관중은 불안하다. 어딘가 아빠의 시선이 아니라 다 큰 딸을 보는 시선은 여느 여자를 성적으로 보는 시선과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라이문다는 늦게 귀가하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딸 파울라를 만난다. 파울라는 이상하게 눈빛이 불안하다. 그리고 다그치는 라이문다에게 그녀가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한다. 자기를 덮치려고 한 아빠인 파코(프란치스코의 준말)와 몸싸움을 하다 그가 죽게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파코는 인간 문화가 수세기 동안 정해 놓은 성행위의 정당한 틀(가족 밖, 상호동의 하, 미성년 금지 등)까지 파괴하며 오로지 자신의 성적 욕구만을 해소하려고 존재하는 듯한 파렴치한 남자의 상징이다. 라이문다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딸에게 당부한다.

넌 아무것도 보지 못한거야. 엄마가 죽인거야. 넌 밖에 있었어. 꼭 명심해 알겠지?”

강인한 엄마의 모습.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를 보호하는 강한 모성. 그 앞에서 관객은 한 번 크게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혹은 현실세계에서 보는 모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모성신화를 업그레이드시켜 완성해주는 바로 그 장면.


그리고 현실을 마주해야하기에 곧바로 시체 수습에 들어간다. 마침 아파트 옆 식당을 비우고 열쇠를 맡기고 간 이웃 식당 사장. 그곳 냉동고까지 라이문다와 딸은 그 시신을 힘겹게 끌고 가서 냉동고에 넣어버리고 자물쇠로 잠근다. 그리고 딸은 파코가 사실은 자신의 친아빠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듣게 된다. 딸은 자신의 친아빠가 누구냐고 묻는데 라이 문다는 나중에 설명해주겠다고 한다.


우연히 맡게 된 식당, 그리고 우연히 이 곳을 들리게 된 근처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 촬영팀은 식당을 찾다가 이 곳에 식사 문의를 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라이문다는 영화 촬영 직원들에게 음식을 팔게 된다. 음식을 팔면서 라이문다는 그 동네 이웃들과 연대하며 시신을 처리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알모도바르의 이 영화에서 여성들은 연대한다. 반면 남성들은 큰 비중이 없거나 악한 의도를 지닌 남성은 정의의 심판을 받는다(파코).


이웃 중 하나는 몸 파는 여성이다. 세상에서 몸 파는 여성은 사회적으로 가장 비천한 신분이지만 알모도바르의 세계는 그런 고정관념을 벗고 그 인간의 내면 안에 있는 의리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여성은 라이문다에게 더 캐묻지 않고 그녀를 도우며 냉장고를 통째로 땅에 파묻는다. 이로서 이 영화 안에서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한 인간(파코)은 신의 심판이 아니라 인간의 심판을 받고 정의가 구현된다.


여기서 또 다른 이야기가 병행하며 흘러가는데, 라이문다 엄마인 이레네 죽음 이야기이다. 이레네는 남편과 함께 불길에 휩쌓여서 죽었다는데 이상하게도 죽은 이후에도 그 마을에서(알모도바르 영화에는 마을이 종종 나온다 페인 앤 글로리에서도) 자주 엄마를 봤다는 사람들의 얘기가 들려온다. 그들은 엄마의 영이 보인다고 믿는다. 마을에 사는 라이문다 이모 집에서 또한 이상하리만큼 이레네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목이 있는데, 이모가 죽자마자 이레네는 자신의 다른 딸 솔레에게 살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레네는 솔레 집에 숨어살게된다. 여기서 가장 웃긴 대사 중 하나가 있는데, 라이문다가 솔레를 방문할 때, 방귀 냄새가 나는데, 이거 분명 엄마 방귀 냄새야 라고 외치는 대목이 있다. 엄마는 침대 밑에서 우는 듯한 얼굴에 낄낄대며 웃음을 참고 있고, 관객도 그 모습에 웃음을 참을 수밖에.


라이문다는 식당을 운영하며 밥을 차리다가 노래 판이 벌어지자 플라멩코 노래를 흐드러지게 부르는 장면이 있다. 멀리서 차에 숨은 엄마의 모습을 보았는지 말았는지 우수에 가득 찬 눈과 한이 서린 목소리가 꼭 플라멩코 노래의 우수와 애환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엄마도 차창 안에서 눈물을 훔치는 데, 두 여인이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는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여기가 바로 박수 나오는 대목이니 꼭 꼭 이 장면은 보시기 바란다.


결국 나중에 엄마는 자신의 살아있는 존재를 라이문다에게 드러내고 사과한다.


딸아 내가 너무 몰랐다. 미안하다.

이 진심의 말에 라이문다도 냉랭하게 대하던 엄마에게 차가운 마음을 거둬들이고 화해한다. 라이문다의 아빠는 항상 바람을 피웠으며, 그가 바람을 핀 여자와 함께 누워있을 때 이레네가 불을 질러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은 불에 휩싸여 죽은 것처럼 가장하고 이모 집에서 숨어 지내왔다는 사실과 함께 그리고 라이문다를 그의 아빠가 강간해서 파울라를 나은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잘못을 범한 인간(라이문다의 아빠)은 신이 아니라 여성들의 손에 의해서 처벌을 받고, 심판은 저 세상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서 내려진다. 정의의 심판관은 여성들 그리고 집행인도 여성들이다. 그리고 파코를 죽인 파울리나도 라이문다 아빠를 죽인 이레네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법망을 빠져나간다.


기구한 한 여성인 라이문다의 삶을 통해 우리는 남성의 성에 억압받아온 여성들의 슬픔과 그에 대한 투쟁과 여성들의 연대와 정의의 구현이 영화처럼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여성과 모성은 승리하고 이를 억압하는 자는 패배한다.


많은 서스펜스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재미까지 선사하며, 알모도바르의 다른 영화와 같지 않게 동성애자나, 드래그퀸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같은 재미와 감동도 놓치지 않는 영화. 스토리는 막장이지만 사실은 사회적인 이슈들(남성과 여성의 관계), 가족 안의 고통과 화해, 여성들의 연대하는 보편적인 정서를 극적으로 잘 끄집어내고 있다. 가히 훌륭하다. 알모도바르 영화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좀 헤비하지만 그만큼 소화할 내용물이 가득 담긴 그런 영화라고 하겠다.


여기서 제목 ‘귀향’은 마을로 귀향한 이를 뜻한다. 평화를 뜻하는 이레네가 마을로 귀향했고, 현명한 보호자인 라이문다가 이제 마을로 귀향한다. 비로소 평화와 현명한 보호자로 인해 마을의 귀향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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